시각예술에서 표현주의는 어느 시기, 어느 지역이든 객관적인 관찰보다 주관적인 감정을 중시한 미술을 가리킨다. 그러나 협의의 의미로는 1905년 프랑스와 독일에서 동시에 나타난 야수파와 다리파가 최초의 표현주의 집단으로 알려진다. 마티스는 1908년에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표현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야수파가 디자인의 조화와 색채의 장식성을 유지한 반면에 독일의 다리파(Die Brucke)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하기 위해 색채와 형태를 격정적으로 구사했다. 독일 표현주의는 1911년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가 이끈 이 그룹은 미술에서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했고 다리파보다 신비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표현적인 경향 일체를 야수파 또는 야수파적 경향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야수파 도는 야수파적 경향이라는 개념은 표현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 양식적인 면에서 한국 표현주의는 입체주의와 야수주의가 표현주의 양식이나 표현주의적 내용과 결합한 절충적 경향을 띤다. 이러한 절충적 성격은 한국 미술계가 여러 현대 미술양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동시에 받아들인 때문이었다.
한국 표현주의 미술의 초기 사례는 1930년대 일본에 유학한 화가들이 당시 일본 전위회화의 조류였던 표현주의를 수용하여 제작한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표현주의 미술의 본격적인 전개는 이들 일본 유학생들이 중견작가가 되는 1950년대에 이루어졌다. 1950년대가 한국 역사상 가장 큰 고난을 당한 시기라는 점에서 한국의 표현주의 미술에는 불안, 불만, 꿈과 구원을 바라는 감정이 개재되어 있다. 따라서 제1차 및 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 화단에 나타난 표현주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시련을 겪게 된 것이 한국 표현주의 회화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겠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이 준 충격과 그로 인해 생긴 절망과 불안 외에 한국 표현주의 회화의 근원으로 고구려 시대의 벽화와 조선시대 절파양식과 같은 전통적 요소가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작가로는 구본웅(具本雄), 이중섭(李仲燮), 박고석(朴古石) 등을 꼽을 수 있다. 구본웅의 작품 중 순수 표현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형태 왜곡과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1930년의 「여인」과 1935년의 「우인상」이 있다. 「여인」은 가느다란 목과 얼굴 등의 선이 극단적으로 변형되어 붉은 색조와 함께 내면적인 깊은 인간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우인상」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작품처럼 내면적인 심리묘사, 비극적인 어두움에 찬 인간상을 연상시킨다. 구본웅이 그의 친구였던 이상을 그린 이 작품은 한 문학가의 성격묘사를 우울하고 회의에 찬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침울한 회색조의 색채를 사용하고 그 재기를 표현하기 위해 날카로운 선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 그림은 한국 표현주의 회화 중에서 초상화로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반면에 입체파적인 직선과 평면이 지배적이며 비교적 선명한 색채로 처리한 1930년의 「비파와 포도」, 1930년의 「정물」 그리고 1933년의 「정물」 등은 표현주의 화가가 그린 입체파적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가 특징인 이중섭의 작품도 대표적인 한국 표현주의를 보여준다. 1954년「걸어가는 소」와 「용을 쓰는 소」는 절망과 분노를 참지 못하는 폭발적인 필치가 무서운 속도로 거칠게 소의 형태를 그린 듯 보인다. 여성적인 직선이 없고 격렬한 감정의 토로와 같은 날카롭고 빠른 속도의 필선으로 그려진 것은 카임 수틴(Chaim Soutine)의 말기 작품을 연상케 한다.
박고석은 야수파와 표현주의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비참한 전쟁 속의 인간을 때로는 화려한 풍경화를 그렸다. 그의 초기 작품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고 밝고 힘차며 조형적인 면이 강한 후기의 산 풍경화는 초월적인 정신의 고양, 유토피아적 새로운 인격과 사회의 출현을 갈망한 독일 표현주의의 메시아적 예술관을 보여준다. 표현주의 작가들이 일반적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느끼는 절망과 불안의식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는 것과 비교하면 박고석의 초월적 표현주의는 특이하다고 하겠다.
한국전쟁 이후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을 전개되어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전반 한국미술계를 휩쓴 앵포르멜 미술도 집단적인 운동으로 전개된 표현주의 미술의 한 유형이었다.
이외에 월전(月田)장우성(張遇聖)과 그 제자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50년대 한국 동양화에서도 표현주의의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색채와 형태의 과장과 왜곡을 특징으로 하는 표현주의는 추상표현주의, 신표현주의와 같은 20세기 후반의 미술운동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경우 표현주의는 한국전쟁 후의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양식으로서 절망과 실의에 찬 공기를 호흡한 한 시대의 화가들이 그려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