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은 모던 아트와 관련된 독립적인 가치 또는 미술에서 근대의 비판적 재현의 한 형태를 뜻한다. 1860년대 프랑스 회화에서 시작하여 한 세기 후 미국 추상표현주의에서 정점에 달한 미술 양식을 말한다. 한국 미술계에는 1930년대 '모더니즘' 개념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이일은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아 한국 모더니즘 개념을 확립했다. 그는 한국 추상미술을 동양의 전통과 연계시켜 서구의 모더니즘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한국 미술계는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을 접목시킨 독자적 모더니즘 미술을 잉태했다.
모더니즘에 대해 가장 활발한 논의를 전개한 영국 오픈 대학교(Open University)의 미술사 교수 찰스 해리슨(Charles Harrison)은 서양미술사에서 사용되는 모더니즘의 의미를 3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 의미의 모더니즘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까지 서구 문화, 즉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이 인간 경험의 주요 메커니즘으로 간주된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의 모더니즘은 일정한 정치, 경제, 기술적 변화로 나타난 환경과 그러한 환경에 대한 일련의 태도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 모더니즘은 형용사 ‘모던’의 명사형이며 그것이 나타내는 조건은 모더니티(modernity)에 대한 경험과 동일시된다. 모더니티를 문학과 예술과 관련해 처음 사용한 보들레르는 1863년 『르 피가로 Le Figaro』에 발표한 「근대적 삶의 화가 The Painter of Modern Life」에서 과거와의 차이의 감각을 기술하기 위해 모더니티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 순간적인 것으로서 예술의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은 영원한 것과 불변적인 것이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두 번째 의미의 모더니즘은 근대 문화 중에서 지배적인 경향을 구분해내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이는 동시대 문화의 살아있는 중요한 측면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모더니즘은 특히 고급미술에서의 근대의 전통을, 그리고 진정한 근대미술이 고전적, 보수적 유형의 미술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구분되는 토대를 가리킨다. 이러한 모더니즘의 대표적 옹호자가 미국의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이다. 1939년에 출판된 그의 글 「아방가르드와 키치 Avant-Garde and Kitsch」에서 아방가르드의 진정하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문화를 진전시키는 것이라고 함으로써 모더니즘의 동력을 아방가르드 실천과 연계시켰다. 그리고 키치와 대립되는 “아방가르드가 절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추상 내지 비대상 미술에 도달했다”고 함으로써 모더니즘과 추상미술의 관계를 정당화하였다.
이 모더니즘이 의미하는 바는 만연한 모더니티라는 조건에 직면하여 주어진 매체 내에서 비판적으로 성취된 미적 기준이다. 이때의 모더니즘의 형용사는 ‘모던’이 아니라 ‘모더니스트(modernist)’이다. 따라서 어떤 회화작품을 '모더니스트'하다고 하는 것은 회화 매체의 요구, 즉 평면성에 대한 자기 비판적 관심을 드러냈다는 의미가 된다. 그린버그에 따르면, 평면성, 이차원성은 다른 어떤 예술도 갖지 못한 회화만의 유일한 조건이며, 평면성이 회화의 유일한 성취의 영역으로 확인된 이상 캔버스 표면에 대한 솔직한 인정은 자기비판적인 모더니스트 회화가 유념해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 의미의 모더니즘은 두 번째 용법의 모더니즘이 나타내는 예술적 경향이 아니라 용법 그 자체, 즉 그 용법이 대표한다고 생각되는 비평의 경향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스트는 미술가가 아니라 미술과 그 발전에 대한 일련의 특수한 생각과 신념을 갖고 판단을 내리는 그린버그와 같은 비평가이다. 이런 의미로 사용되는 모더니즘은 흔히 대문자(Modernism)로 표기된다. 모더니스트 비평의 전통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나타나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저서에서 처음으로 구체화되었고 20세기 초 영국에서 클라이브 벨(Clive Bell), 로저 프라이(Roger Fry) 등에 의해 발전되어 1930년대 말과 1960년대의 그린버그와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의 저서에서 그 전형적 모습을 선보였다.
한국 미술계에서 서구 모더니즘의 이론적 토대로 언급되는 보들레르의 미학에 대한 관심은 이미 1910년대부터 나타난 것으로 보이고 1920년대에는 다양한 잡지나 일본의 화집을 통해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져 후기 인상주의, 야수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등과 같은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이 어느 정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의 구체적 사용은 1931년부터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식민지 현실에 대한 인식과 그 예술적 대응방식으로 나온 다양한 미술이론, 즉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강조한 프롤레타리아 미술론과 기교미만을 추구한 과거의 미술을 지양하고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결합을 필요성 강조한 무정부주의 미술이론 그리고 관념적 동양의 이상향을 노래한 ‘아세아주의’ 미술론 등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특히 식민지 현실에 대한 고민과 민족의식을 담아내고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할 계기를 제공하여 동시대 많은 미술가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향토색론은 1930년대 한국미술의 근대성을 이루는 한 요소이자 동시에 민족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서구와는 다른 한국 모더니즘의 한 특색을 이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미술에 있어서 모더니즘 개념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은 일본 미술계의 동향에 대한 정보만이 아니라 30년대 문인들과의 교류도 적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 이유는 구인회 중심의 모더니즘 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에 미술계에서도 모더니즘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구인회 소속 문인들이 현대미술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고 근대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기교주의에 치우친 경향을 문명비판으로 균형을 잡으려 했던 김기림의 모더니즘론이 예술의 존재의의를 예술적 감흥과 윤택하고 새로운 생활의 결합, 즉 예술과 윤리의 결합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 김복진의 미술이론과 유사한 점이 문학과 미술의 활발한 교류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둘 사이의 유사성을 영향관계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이념적 대립과 견제가 서로를 영향권 내에 잡아두고 긴장된 균형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말에 이르러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에는 30년대 전반의 긴장된 균형 감각이 사라지고 단지 양식의 하나라는 의미만이 남는다. 결국 1930년대에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 ‘모더니즘’ 개념은 초기 그 문명비판의 가능성이 싹을 피우기도 전에 일본 식민지 권력의 개입으로 지극히 협소한 의미만 남긴 채 위축되어 버렸다고 하겠다. 한국 미술계에서 ‘모더니즘’ 미술이 예술성 일변도로 전개된 연유를 바로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김환기(金煥基), 구본웅(具本雄), 주경(朱慶), 한묵(韓默), 이중섭(李仲燮), 정규(鄭圭), 이규상(李揆祥), 남관(南寬), 유영국(劉永國), 이준(李俊), 박고석(朴古石), 이봉상(李鳳商), 문신(文信) 등 한국 근대미술을 이끈 미술가들은 새로운 조형어법의 확립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해방 이후 한국 모더니즘 이론을 확립한 이일은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동시에 한국 추상미술을 동양의 전통과 연계시켜 서구의 모더니즘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이일은 자신의 이러한 모노크롬 회화론을 권영우(權寧禹), 김구림(金丘林), 김용익(金容翼), 박서보(朴栖甫), 심문섭(沈文燮), 윤형근(尹亨根), 이동엽(李東燁) 등의 작품분석에 적용하며 70년대 한국 미술비평계를 풍미하였다.
특히 그는 한국 모노크롬 회화를 서구 미니멀리즘과 차별화하기 위해 독자적인 우리의 자연관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환원적 요소를 부각시켰다. 첫 번째 요소는 그린버그가 제시한 평면성이라는 회화의 전제조건인데, 이일은 “‘평면으로서의 회화’, 다시 말해서 회화가 스스로에로 환원된 평면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평면의 회화적 텍스츄어화가 전제되어야” 하며, ‘평면의 회화적 텍스츄어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색채 또는 형상(선, 형태)이 화면 전체를 메우든 아니든 그것들이 어떤 ‘추가물’이 아니라 그 색채와 형상이 캔버스와 꼭 같은 차원에서의 그리고 그 속에 통합된 실재성”을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두 번째 요소는 그러한 ‘회화적 텍스츄어화’를 위한 예술행위의 환원인데, 그는 그것을 “자연을 닮은 원천적인, 다시 말해서 자연무위의 행위”로 풀이하였다. 이일은 이 자연무위의 행위가 곧 원천적인 것에로의 회귀와 본연적인 것에로의 회귀를 의미하며 이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나라 미술의 기본명제라고 함으로써 모더니즘 개념에 전통을 접목시켰다. 여기서 전통과의 결별내지 저항을 기치로 내걸은 서구의 모더니즘과는 다른 한국 모더니즘의 또 다른 특수성이 나타났다.
한국미술의 근대가 서양미술의 도입과 수용에서 시작되었고 그 과정도 단편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으나 다양한 그룹과 개인의 창작 활동을 통해 한국미술계는 서구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을 접목시킨 독자적 모더니즘 미술을 잉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