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고석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40년에 대학 동창들로 구성된 ‘격조전(格調展)’에 참여하면서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3년에는 도쿄에서 첫 개인전을 가진 뒤 쇼치쿠〔松竹〕영화사의 만화영화제작부에서 일하였다.
1945년 광복과 함께 평양으로 돌아왔으나 곧 서울로 내려와 배화여고와 대광중고에서 미술교사를 담당하였다. 6·25가 발발하자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해 부산공고 미술교사를 지냈는데, 이 시절 이중섭(李仲燮), 김환기(金煥基), 한묵(韓默) 등과 함께 지냈다.
1952년 이중섭, 한묵, 손응성(孫應星), 이봉상(李鳳商) 등과 함께 ‘기조전(其潮展)’을 창립하였고, 1957년에는 이규상(李揆祥), 유영국(劉永國), 황염수(黃廉秀), 한묵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여 1962년 해체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참여하였다.
박고석은 1950년대까지는 자연주의적 모티브에 야수주의, 표현주의 경향의 화풍을 드러내는 작품을 제작하였으나, 모던아트협회 참여를 계기로 1961~62년경에는 추상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곧 추상회화에 회의를 느끼며 한동안 작품을 중단하였다.
박고석은 1967년 이봉상 등과 함께 ‘구상전(具象展)’을 창립하면서 다시 창작을 재개하였다. 이 무렵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북한산, 설악산, 백양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을 여행하면서 산의 사계절을 그림으로 남겼다.
1970~80년대에 그린 산 그림은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두터운 유화물감의 질감, 힘과 탄력이 넘치는 필치, 강렬한 색채대비를 통해 산의 감동을 표현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부드러운 필치로 잔잔한 여운이 감도는 소박한 풍경을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6·25전쟁 중의 상황을 강렬하고 거친 필치로 표현한 「범일동 풍경」(1951)과 「가족」(1953), 단순하고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로 산의 형상을 묘사한 「치악산」(1973)과 「외설악」(1981) 등이 있다.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고 1987년에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