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은 박생광이 1985년에 그린 역사화이다. 종이에 수묵 채색된 작품으로 박생광의 대표적 역사화이다. 이 그림은 전봉준의 전주성전투를 소재로 동학농민운동의 혁명 정신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호남제일성’이라는 글씨가 있어 격전의 공간이 전주성임을 말해 준다. 구성은 화면 한가운데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정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휘감아 돌면서 화면 밖으로 확산되는 구조이다. 이 그림은 화면의 복합적 구성, 대담한 원색 구사, 강인한 생명력 표현 등이 뛰어나다.
1920년대에 일본 유학을 통해 일본 채색화를 접했던 박생광은 1970년대까지 일본화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1974년에서 1977년까지 두 번째 일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박생광은 작품 제목을 「한국화 나」라고 붙일 정도로 ‘한국화’의 방향 모색에 골몰하여 재료와 기법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한국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1981년 백상기념관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박생광은 단청 안료와 아교, 먹을 배합한 새로운 불화적 기법을 창안하였다. 1982년에서 1985년 타계하기까지 제작한 박생광의 말년작들은 조선민화, 불화, 고구려 벽화와 같은 한국의 채색화 전통을 현대화하여 강렬하고 역동적인 진채화의 세계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봉준」은 박생광이 1984년 후두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면서 완성한 마지막 대작이다. 그는 1986년 경주 남산 마애불상전과 88올림픽에 맞춰 한국의 대역사드라마전 등을 계획하고 안중근, 윤봉길, 단군을 소재로 한 역사화를 그릴 계획이었으나 나머지 작품들은 연구자료만 남긴 채 타계하였다.
이 작품은 1894년 농민군의 최대 승리로 이끈 전봉준의 전주성전투를 소재로 동학농민운동의 혁명정신을 역사화한 작품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이라는 흰색 글씨가 쓰여 있어 격전의 공간이 전주성임을 말해주고 있다. 구성은 화면 한가운데에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이 정면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농민군의 화살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는 관군, 왼쪽에는 흰옷을 입고 공격하는 농민군, 화면의 전경에는 소와 닭, 그리고 두 손을 모으고 오열하는 인물 등이 전봉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 휘감아 돌면서 화면 밖으로 확산되는 구조이다. 전주성전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형상을 해체하여 재구성함으로써 동학농민의 강한 힘과 혁명 정신을 역동적으로 전달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박생광은 전봉준이 1894년 12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일본 공사관으로 압송될 당시 일본인 사진사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이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전봉준의 얼굴을 그렸으며 전봉준 밑에 두 손을 모은 여성의 형상은 무당 김금화(金錦花)의 사진을 참조하였다. 두 손을 모은 여성의 형상은 「명성황후」(1984)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박생광이 이 두 역사화를 제작할 때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1937)의 해체적 화면구성과 평면성, 형상의 강렬한 표현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생광의 ‘그대로 화풍’은 단청 안료를 사용하여 생지(生紙)에 부분적으로 먹을 떨어뜨려 발묵시킨 후 그 위에 주황의 색선을 긋고 다시 구획된 면과 면을 메꾸어나가는 방법을 정형화시킨 것이다. 「전봉준」은 기법 면에서 1980년대 박생광 화풍의 절정기를 보여준다. 작품 제작방식을 보면 먼저 주황색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아교와 먹을 뿌린 후 주황색으로 구획된 면과 면을 원색들로 칠해나간다. 이때 화면 전체에 퍼져있는 주황색선들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하나로 통일시키며 역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 사이 사이에 채색된 원색들은 완전히 섞이지 않도록 중첩시킴으로써 원색 자체의 특성이 극대화된다. 발묵효과는 원색과 원색간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오래된 불화와 같은 중후한 깊이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한다.
1980년대 박생광의 채색화는 화면의 복합적 구성, 대담한 원색의 구사,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 등 기존 한국화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경향을 창출해냄으로써 해방 이후 일본화의 잔재로 비판받던 채색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