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면 ()

회화
인물
일제강점기 「점매」, 「신록의 계류」 등을 그린 화가.
이칭
이칭
동강(東岡)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6년(고종 43)
사망 연도
1948년
본관
연일(延日)
출생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관련 사건
조선미술전람회|일본 문부성전람회|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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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점매」, 「신록의 계류」 등을 그린 화가.
개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담양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이다. 호는 동강(東岡),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글씨는 성당(惺堂)김돈희(金敦熙), 그림은 소정(小亭)변관식(卞寬植)과 의재(毅齋)허백련(許百鍊)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특선 1회, 입선 4회, 동양화부에 3회 입선하였고 문부성미술전람회에도 입선하였다. 기타 여러 전시회에 활발히 출품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 호남 화단을 이끌 신예 화가로 주목받았지만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6년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서 송강(松江)정철(鄭澈)의 12대손으로 태어났다. 박홍주(朴鴻周)에게서 사군자를 배우고 성당(惺堂)김돈희(金敦熙)에게 서법을 익혔다. 1929년 무렵 거주지를 광주로 옮겼고 당시 광주에서 머무르던 소정(小亭)변관식(卞寬植)에게서 본격적인 신남화풍(新南畵風) 산수화를 배우면서 서울의 김경원(金景源) 등과 가까이 교유하였다. 1927년에 개최된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사군자부에 「점매(點梅)」를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였고 이후 1928년, 1930∼1933년까지 여섯 차례 입선을 하였고 1929년 제8회에는 특선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 부에서 입선 3회, 특선 1회를 하였고 동양화 부에서 3회 연속 입선을 하였다. 서울 휘문고보에서 열린 제14회(1935년), 15회(1936년) 서화협회전(書畵協會展)에도 출품하였고, 1938년에는 의재(毅齋)허백련(許百鍊)의 연진회(鍊眞會)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여러 전람회에도 활발히 작품을 출품하였다. 1942년에는 일본 문부성미술전람회에 「신록(新綠)의 계류(溪流)」를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같은 해 남농(南農)허건(許楗)의 아우인 허림(許林)과 함께 광주에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43년 일본에 건너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1945년에는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 회원이 되었다. 1947년 서울에서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복막염에 걸려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해 10월에 조선미술협회와 단구미술원 주최 유작전이 화신백화점 화랑에서 개최되었다.

그림의 여러 분야에 모두 능했지만 산수화와 사군자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산수화는 대략 세 시기로 구분된다. 초기에는 변관식의 영향이 두드러졌고 중기에는 허백련의 남종화 운동에 동참하며 전통적인 화풍을 보였으며 문부성미술전람회 입선 이후에는 일본 화풍의 영향이 엿보이는 산수화를 제작하였다. 사군자 특히 매화 그림에서는 전통적 화풍의 영향이 보이지만 특유의 다소 거칠고 분방한 필치의 그림을 남겼다. 보수적인 남종화 전통이 강한 보수적인 광주화단에 개성적인 화풍의 작품을 제작하여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상훈과 추모

1927∼29년, 1930∼33년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회, 입선 6회(사군자부 특선 1회, 사군자부 입선 3회, 동양화부 입선 3회)

1942년 문부성미술전람회 입선 1회 및 허림과의 공동 전시회 개최(광주)

1947년 서울 화신백화점 유작전

참고문헌

『한국 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동강 정운면의 생애와 회화세계」(김소영, 『호남학연구』 제43집,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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