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학자로 배재학당 영어과를 졸업한 후 배재학당에서 8년간 근속한 후 정신여학교에서 25년 근속하였다. 『청년(靑年)』, 『신생(新生)』 등 잡지에 「조선고금시화(朝鮮古今詩話)」, 「조선시사(朝鮮詩史)」, 「조선(朝鮮) 고금(古今)의 미술가(美術家)」 등을 연재하였다.
1928년에 회갑연을 한 것으로 미루어 186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893년배재학당 영어과를 졸업하고 이후 8년 동안 배재학당에서 교사로 근무한 후 정신여학교에서 25년간 근무하였다. 한학자로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역사 등을 국한문혼용체로 풀이하여 소개하였다.
문학 분야에서는 「조선고금시화(朝鮮古今詩話)」를 『청년(靑年)』 1922년 5∼7월호에 연재하였고, 1930년에서 1934년까지 『신생(新生)』에 「조선시사(朝鮮詩史)」를 42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이밖에도 「조선고대명공열전(朝鮮古代名公列傳)」, 「조선(朝鮮)의 발명가(發明家)」, 「조선(朝鮮)의 중세상업가(中世商業家)」,「사상(史上)에 나타난 여성(女性)의 편모(片貌)」, 「조선풍토기략(朝鮮風土記略)」, 「조선활자고(朝鮮活字考)」, 「조선주자고(朝鮮鑄字考)」, 「단군(檀君)」 등을 1910∼30년대에 간행된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글씨와 그림에 대해서는 「조선(朝鮮) 고대(古代)의 문예(文藝)와 미술(美術):명필사대가(名筆四大家)」를 『진생(眞生)』 4권 8호(1928년)에, 그리고 「조선(朝鮮) 고금(古今)의 미술대가(美術大家)」를 『청년(靑年)』 1922년 2∼4월에 연재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조선 고금의 미술대가」는 창덕궁 이왕가박물관 소장 조선화가들의 작품을 연구한 것으로 삼국시대의 솔거(率居)와 백여(白如: 白加의 오기), 담징(曇徵), 고려시대의 이녕(李寧), 명종(明宗), 공민왕(恭愍王) 등을 짧게 언급한 이후 대부분의 내용을 조선 초기의 강희안(姜希顔)에서 당대의 화가인 이도영(李道榮), 김은호(金殷鎬)에 이르는 화가들을 시기별로 간략한 약력과 특징을 사전식으로 서술하였다.
그의 저술은 대체로 일화(逸話) 중심의 전통적인 서술방식으로 된 경우가 많은데, 미술 분야 역시 대개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작가론이나 통사적 저술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삼국이나 고려시대에 치우친 일제시기 대개의 저술과 달리 조선시대의 화가를 중요시했고 많은 수효의 화가를 다루었다는 점, 당대 화가들을 포함시켜 서술했다는 점에서 그의 저술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일제의 조선미술쇠퇴론에 맞서 조선시대 미술의 성과가 빈약하지 않았음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1930년 10월 20일. 정신여학교 근속25주년 기념식이 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