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윤식(金允植), 김성근(金聲根) 등이 1910년에 고서화를 보존하고 후진자(後進者)를 장려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로서 조선의 고서화를 보존하고 후진을 장려하기 위한 단체를 표방하였다. 단체의 구성원과 구체적인 실제 활동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선의 서화법(書畵法)이 날이 갈수록 쇠퇴함을 우려하여 고서화를 보존하고 후진을 장려하기 위하여 1910년 창립되었다. 1911년 3월 22일 제2회 모임이 개회되었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윤식(金允植)과 역시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김성근(金聲根) 등이 “조선 고래(古來)의 서화법(書畵法)이 일일(日日) 쇠퇴함을 우려하여 고서화를 보존하고 후진자(後進者)를 장려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1911년 3월 22일 『매일신보』에 “작년(昨年) 이래로 조선미술보존회를 조직하였는데 본일(本日)에 제이회(第二回)로 개회할 터”라는 기사로 미루어 1910년에 창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김윤식과 김성근을 제외한 다른 구성원과 규약 및 실제 활동내용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1911년에 제정된 조선총독부의 사찰령(寺刹令)과 관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면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1911년 1월에 고찰(古刹) 보존규칙을 정하고 2월 14일자로 각 도(道) 사찰에 소유하고 있는 보물목록을 제출토록 조치를 내렸고 7월에는 그 시행 세칙을 만드는 등 국가유산 관리, 통제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총독부의 국가유산 관리와 통제의 움직임은 1911∼1912년 즈음에 고려자기 수집 열기가 최고로 올라 무수한 도굴과 밀매가 끊이지 않은 당시의 현실 때문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