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조직된 백우회(白牛會)의 후신이다. 양화, 조각, 공예, 자수 등 미술 전 분야를 아우른 동경 소재 미술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 백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동인으로는 서양화가 김만형(金晩炯), 심형구(沈亨求), 이쾌대(李快大), 장욱진(張旭鎭), 조각가 김경승(金景承), 윤승욱(尹承旭) 등이 있다.
1935년 일본의 제국미술학교 유학생들이 조선미술학우회를 발전시켜 백우회를 조직하였으나, ‘우(牛)’자가 조선민족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일본이 압력을 가하자 1937년 ‘재동경미술협회’로 개칭하였다.
결성 이듬해인 1938년부터 연 1회 경성(현재의 서울)에서 전시를 열어 1943년까지 총 6회를 개최하였다. 1회전은 ‘재동경미술학생종합전’으로 열었으나 이후 ‘재동경미술협회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 2회전은 화신백화점 7층 갤러리에서 열었고, 3회전부터는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의 후원으로 조선총독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었다. 매 회 출품작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1942년에는 20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의미로서는 조선화단의 후계자들이요 나아가서는 다음에 올 새로운 제네레이션을 건설할 사람들”(정현웅, 「재동경미술협회전 평」, 『조선일보』 1939년 4월 23일자 석간4면)로 평가받은 동경유학생들이 대동단결한 미술단체였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회원 가운데 일부는 일본의 관설미술전람회 이외 이과전(二科展), 독립미술가협회전(獨立美術家協會展)과 같은 전위미술단체에서도 활동하였기 때문에 경성에서 개최한 협회전은 일본화단의 다양한 동향과 추세를 국내에 전달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재동경미술협회와 관련된 전시자료 및 신문, 잡지에 수록된 전람회 평은 월북작가들을 포함한 한국근현대미술가들의 초기 활동상 및 작품성향을 유추할 수 있는 사료로서도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