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 이상범, 김기창, 노수현, 배렴, 허건을 비롯한 조선인 남화가 40여 명이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1942년 10월 제1회 조선남화연맹전람회를 개최한 이래 43년까지 총 2회의 전시를 열었다. 전시에는 조선인 작가 외에 가타야마 탄(堅山坦), 미키 히로시(三木弘) 등 일본인 작가들도 참여하였다.
설립목적은 남화 정신을 기초로 하는 조선인 작가들의 작품연구와 발표에 두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림을 통해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채관보국(彩菅報國)’의 취지하에 전시작품의 판매 수익금을 육해군에 헌납하는 등 전시체제하 일본의 총동원령에 부합한 정치적인 미술활동을 자행하였다.
1920년대 일본화단에서는 신일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서양화가들을 중심으로 근대 초기 배척받은 남종문인화풍의 표현성과 서예미를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1930년대 국내화단에서도 남화 및 수묵화를 서구 표현주의 회화에 앞선 전위적 회화로 주장하는 회화론이 유입되면서 이에 동조한 작가들이 다수의 남화 및 서예단체를 설립하였다. 조선남화연맹전에 출품하였던 이제창, 구본웅, 이승만, 윤희순이 서양화가임에도 불구하고, 남화전통을 통해 동양화풍 혹은 조선화풍의 유화를 모색하였던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