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고산동 20호분 ( )

고대사
유적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 봉토석실분.
이칭
이칭
고산동20호무덤, 식물원20호분
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 봉토석실분.
개설

고산동20호분은 대성산의 소문봉 서남쪽 기슭에서 대동강 쪽으로 뻗어나가다가 대성동에서 삼석구역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의해 잘린 낮은 구릉의 동북쪽 기슭에 조성되었다. 무덤 앞은 탁 트였고 무덤 뒤로 대성산성(大聖山城), 동쪽으로 안학궁터〔安鶴宮址〕가 보인다. 무덤의 서북 1㎞ 지점에 고산동 1호분, 고산동7호분, 고산동 9호분, 고산동10호분 등의 벽화고분들이 있다.

내용

고산동20호분의 무덤방향은 남향이다. 널길〔羨道〕과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외방무덤〔單室墳〕으로 널길은 널방 남벽의 동쪽에 치우쳐 설치되었다. 무덤칸은 반지하에 축조되었고 무덤칸 바닥은 2㎝ 두께로 숯을 덮고 다시 4.5㎝ 두께로 회를 발라 마무리하였다. 무덤칸 천장부는 무너지고 벽체의 상당 부분도 파괴된 상태로 발견, 조사되었다. 널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회죽을 두껍게 발라 문틀을 만들었으며 널방 안에는 남북으로 길게 높고 낮은 두 개의 널받침〔棺臺〕를 설치하였다. 널길의 길이×너비×높이는 각각 2.20m×1.90m×1∼1.20m이고, 널방은 2.70m×2.45m×1∼1.50m이다.

널방 안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벽화를 그렸으나 회벽이 떨어지면서 벽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적어졌다. 널방 벽 모서리에는 붉은 색으로 22㎝ 두께의 목조 가옥 기둥을 그렸지만 서북 모서리의 것만 형태가 잘 남아 있다. 목조 가옥의 뼈대만 벽화로 표현한 유사한 사례로 집안의 만보정1368호분을 들 수 있다. 무덤칸 바닥에서 수습한 회벽조각 가운데 구름무늬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산동20호분의 벽화 주제가 생활풍속일 가능성도 있다.

의의와 평가

고산동20호분은 무덤구조, 벽화의 내용으로 보아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목조 가옥 기둥이 그려진 몇 안 되는 벽화고분으로서 그 자료적 가치가 자못 크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고구려고분벽화의 세계』(전호태,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고구려고분벽화연구』(전호태, 사계절, 2000)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 고고학 및 민속학강좌,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3)
「고산동20호 벽화무덤에 대하여」(김사봉,『조선고고연구』, 1990년 2기)
「대성산성무덤떼」(채희국,『유적발굴보고』9-대성산일대의 고구려유적에 대한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집필자
전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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