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2007년 왕흥사지 목탑지 발굴 조사 때, 심초석의 남쪽 부분에 마련된 장방형 사리공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사리장엄구는 청동제 원통형 사리함,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 등 3중으로 구성되었다.
왕흥사 목탑지 심초석 아래 장방형의 석재 안에 사리구가 안치되었는데, 청동제 사리합, 은제 사리호, 금제 사리병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리는 불교에서 중요하게 받들기 때문에 다중 구조로 봉안되며, 내부에 들어가는 기물일수록 귀중한 재료로 만든다. 왕흥사의 사리구도 제일 안쪽에 금제 사리병을 두었는데, 굽이 있고 아래로 갈수록 볼록해지는 호리병 형태로 만들었다. 뚜껑 가운데 보주형 손잡이가 있고 그 주위에 6개의 연꽃잎을 새겨 넣었다.
은제사리호는 긴 목 아래로 둥근 몸체가 연결되며, 낮은 굽을 갖춘 항아리 형태이다. 뚜껑에는 연봉오리형 손잡이가 있고 주위에는 연꽃잎이 장식되었다. 목 부분에는 접합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든 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청동제 사리함은 바닥이 납작한 원통형이며, 몸체의 위쪽과 아래 부분에 두 줄의 음각선을 둘렀다. 사리함 뚜껑에도 같은 형태의 음각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새겨져 있다. 뚜껑에 달린 연봉오리형 손잡이는 부러진 채 발견되어 복원되었다.
사리구 외에도 왕흥사 목탑지 심초석 주변에서는 목걸이,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금속공예품과 옥기, 곡옥, 다면옥, 환옥 등 옥공예품이 다량으로 동반 출토되었다. 백제의 뛰어난 세공기술과 조형 수준을 알려주는 유물이면서, 사리장엄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청동제 사리함의 표면에는 6행 29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정유년 2월 15일 백제 창왕(위덕왕)이 죽은 왕자를 위하여 사찰을 세웠고 2매였던 사리가 신의 조화로 3매가 되었다(丁酉年二月 十五日百濟 王昌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神化爲三)”라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사찰의 건립과 사리구의 제작이 577년에 이루어졌고 창왕이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을 알 수 있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구는 양호한 상태로 유물이 보존되었고 사리 안치 법식이 확인되었다. 명문을 통해, 제작 연대와 후원자의 신분, 그리고 조성 연유도 살펴볼 수 있다. 백제 후기 사리봉안 의식과 사리구 제작, 왕실의 불교 후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9년 6월 26일 국보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