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3년(세종 25)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申叔舟, 1417∼1475)가 1471년(성종 2) 왕명으로 일본의 정치 · 외교 · 사회 · 풍속 · 지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책이다. 2010년 10월 7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래하고 있는『해동제국기』는 5장 분량의 초주갑인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과 임진왜란 직후인 훈련도감에서 간행한 을해자체목활자본,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 1923년에 후손 신용휴가 간행한 목활자본 등이 있다. 이 책은 훈련도감에서 간행한 을해자체목활자본에 해당한다. 이 책을 바탕으로 1933년조선사 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제2집으로 영인본을 간행하였고, 1974년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해행총재를 간행하면서 이 책을 영인, 수록한 바 있다.
2권 2책으로 된 을해자체목활자본이다. 표지는 황지홍사에 오침안정법을 사용한 선장본이다. 판식은 사주쌍변에 반곽의 크기는 세로 13.0㎝, 가로 18.5㎝이다. 계선은 유계이고, 10항 19자, 어미는 내향3엽화문어미로 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신숙주는 1443년(세종 25) 당시 27세의 나이로 서장관으로서 일본을 방문하였다. 저자는 일본에서의 사행(使行)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외교 관계를 정리하는 한편, 이 책이 완성된 이후에도 일본과의 중요한 조약 체결 등 내용이 추가되거나 잘못된 부분은 계속 보충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책이 개인의 기행문의 성격을 넘어 외교 관계의 지침서 역할을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동제국은 일본의 본국 · 구주 및 대마도 · 일기도(壹岐島)와 유구국(琉球國)을 총칭하는 말이다. 찬술 당시의 내용은 해동제국총도(海東諸國總圖) · 일본의 본국도(本國圖) · 서해도구주도(西海道九州圖) · 일기도도(壹岐島圖) · 대마도도(對馬島圖) · 유구국도(琉球國圖) 등 6매의 지도와 일본국기(日本國紀) · 유구국기(琉球國紀) · 조빙응접기(朝聘應接紀) 등이었다.
이후 1473년(성종 4)에 ‘성화구년(1473) 구월초이일 계(成化九年九月初二日啓)’가 부재(附載)되었고, 다음해인 1474년(성종 5)에는 예조좌랑 남제(南悌)가 웅천제포도(熊川薺浦圖) · 동래부산포도(東萊釜山浦圖) · 울산염포도(蔚山鹽浦圖) 등 지도 3매를 추가하였다. 또한 1501년(연산군 7)에는 성희안이 유구국 사신에게 유구의 풍토와 인물 · 세대에 대해 상세히 질문하여 답변한 내용을 병조판서 이계동(李季仝)의 제안으로 해동제국기 끝에 기록했다. 그리고 권말에 5장의 유구어 어음번역(語音飜譯)이 추가되었음이 특이하다.
어음 번역의 우리말 표기는 조선사 편수회 소장의 초주갑인자본을 바탕으로 한 조선사 편수회 영인 간행본(1933년)과 동일하다. 또한 권말에는 ‘홍치십사년(1501) 사월이십이일 계하승문원(弘治十四年四月二十二日 啓下承文院)’이라는 기록을 통해 임금의 재가를 받아 승문원에 알린 시기가 이 책의 간행 시기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 책은 17세기 초 훈련도감에서 을해자체목활자로 간행하면서 약 100년 전에 찍은 초주갑인자의 내용과 동일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간행된 을해자체목활자본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초주갑인자본이 발견되지 않는 시점에서 가장 오래된 판본이고, 15세기 일본의 역사와 지리, 한일외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