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흥창사(興昌寺)의 남쪽 자씨각(慈氏閣)에는 201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석조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다. 자씨는 미륵보살을 의미하나, 도상학적으로 이 보살 입상의 존명을 뚜렷하게 밝힐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 다만 장식성이 강조된 보살상의 형식에 천의 대신 불의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여래와 보살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 미륵 보살상일 가능성이 있다.
이 불상이 위치한 곳은 이전부터 ‘탑골’이라 불리던 곳이며, 한국전쟁 이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하므로 주변의 사찰 터와의 관련성이 깊은 불상이다. 2008년 자씨각 주변 절터에서 ‘삼각산 청담사 삼보초(三角山靑潭寺三寶草)’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곳이 신라 때의 문장가 최치원이 지은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나오는 ‘화엄십산(華嚴十山)’ 가운데 하나인 부아산 청담사(負兒山淸潭寺) 터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석조보살입상은 두 다리의 발목 이하는 땅속에 묻혀있고, 목 부분에는 시멘트로 이어붙인 흔적이 있다. 머리는 마치 터번을 쓴 듯 풍성하게 빗어 올렸고, 중앙에는 가르마를 탔다. 보계는 바루[鉢]를 엎어놓은 듯하고, 큼직한 꽃무늬 장식이 있는 장신구로 고정시켰다. 이목구비는 마멸되어 자세하지 않으나, 얼굴에는 포동포동하게 살집을 올린 데서 원만 상호를 구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머리의 중앙을 가른 가르마 바로 아래 이마에 큼직한 백호를 박았고, 굵은 목에는 삼도를 나타내지 않았다. 보발의 표현과 보관의 장식 등에서 보살상의 형식을 의도한 듯하지만, 착의는 통견 착의법을 보인다. 이 불상은 여래와 보살의 이중적 성격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고려 전기에 제작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나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등에서도 같은 도상적 특징을 보인다. 아마도 이 보살상을 모신 ‘자씨각(慈氏閣)’이라는 전각 명칭이 의미하듯, 미륵신앙의 역사적, 도상적 전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불상의 대의(大衣)는 목깃에서부터 둥글게 물결 모양을 이루며 흘러오다 허리 부근에서 다시 Y자 모양으로 갈라져 양 허벅지로 흘러내린 이른바 우다야나식(Udayana, 優塡王式)이며, 주름은 좁은 간격으로 촘촘히 새겼다. 특히 대퇴부 부근에는 지그재그로 역 ‘八’자(字) 모양의 음각 주름이 반복적으로 새긴 것과 팔 아래로 넓게 부채처럼 펼친 주름이 특색이다. 오른손은 들어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내려 대의의 자락을 잡고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귓불이 어깨에 닿았다. 작달막한 신체에는 얇은 대의를 신체와 유기적으로 밀착시켜 볼륨과 굴곡이 잘 드러나 있다.
이 불상에서 보이는 독특하게 틀어 올린 머리모양, 일정한 간격으로 세밀하게 새긴 옷 주름, 목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부자연스러운 선, 왜소한 가슴과 비대한 팔, 짧고 두터운 허리, 튼튼한 허벅지 등은 원주 신선암 석조보살입상이나 매지리 보살입상, 그리고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등 나말여초로 추정되는 불상들과 양식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이 보살상은 불교사에서 중요한 ‘화엄십산’ 중 하나인 청담사와의 연결고리를 가진 불상이자, 고려 전기 유행했던 미륵도상의 연구 및 북한산 주변으로 크게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한 단면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