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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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사인 24사에 기술된 한국 관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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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선전은 중국의 역대 왕조별 공인된 역사서 24종에 기술된 한국 관련 기록을 통칭한다. 사마천의 『사기』 이후 중국의 역사서가 주변 민족과 지역에 관한 내용을 동이전, 사이전, 이만전, 외국전 등의 열전에 별도 항목으로 서술하면서부터 기록되었다. 중국 사서 가운데 조선전이 없는 것은 남북조시대에 저술된 『진서』와 『북제서』 뿐이다. 한국의 역사를 기술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직접적인 연관된 사항만을 기록했다. 『송사』 이후 『명사』에 이르는 조선전에서는 시사적인 사건의 서술이 많은데, 고려를 고구려의 계승 국가로 기술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목차
정의
중국 정사인 24사에 기술된 한국 관련 기록.
개설

24사에는 중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역사가 열전으로 분류되어 실려 있다. 열전은 동이전(東夷傳) · 사이전(四夷傳) · 이만전(夷蠻傳) · 동남이전(東南夷傳) · 제이전(諸夷傳) · 이역전(異域傳) · 이맥전(夷貊傳) · 외국열전 등의 권명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한국사와 관련된 것을 ‘조선전(朝鮮傳)’이라 통칭한다.

내용

중국 정사 24사는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에서 시작된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부터는 왕조마다 시대를 구분하는 단대사(断代史)로 『후한서(後漢書)』 · 『삼국지(三國志)』 · 『진서(晉書)』 · 『송서(宋書)』 · 『남제서(南齊書)』 · 『양서(梁書)』 · 『진서(陳書)』 · 『위서(魏書)』 · 『북제서(北齊書)』 · 『주서(周書)』 · 『남사(南史)』 · 『북사(北史)』 · 『수서(隋書)』 · 『구당서(舊唐書)』 · 『신당서(新唐書)』 · 『구오대사(舊五代史)』 · 『신오대사(新五代史)』 · 『송사(宋史)』 · 『요사(遼史)』 · 『금사(金史)』 · 『원사(元史)』 · 『명사(明史)』 등이 편찬되었다.

중국 정사는 중국 자체의 사서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걸친 사료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사와 관련된 사료는 동이전(東夷傳) · 사이전(四夷傳) · 이만전(夷蠻傳) · 제이전(諸夷傳) · 이맥전(夷貊傳) · 외국전 등의 열전에 담겨있는데 이를 ‘조선전(朝鮮傳)’으로 통칭한다.

중국 사서 가운데 조선전이 없는 것은 남북조시대에 저술된 진서(陳書) 및 북제서(北齊書) 뿐이다. 이는 나라 존속 기간이 짧고 판도도 좁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국 정사 속에서 거의 빠짐없이 조선전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중국 사서에서 조선전과 같이 주변 민족과 지역에 관한 기술을 별도 항목으로 서술할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거의 모든 사서가 이에 따랐다. 열전 가운데 맨 마지막에 기술하는 방식 또한 같았다. 열전은 본래 한 시대의 좋든 나쁘든 두드러진 행적을 보인 인물의 전기를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열전에 포함시키는 것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사마천 『사기』 이후 이를 무비판적으로 따랐다.

조선전은 한국 역사를 기술한 것이기 보다는 중국과 직접적인 연관된 사항만을 기록한 것이다. 때문에 『사기』에는 한국의 태고 때의 이야기나 단군 · 기자 등의 기록보다는 전국시대 중국의 연나라 사람이라고 하는 위만부터 시작하여 한나라 당시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이 조선의 우거왕(右渠王)을 쳐서 싸운 전투의 경과 및 한무제 당시의 한4군 설치에 이르는 경과 등만 실려 있다. 조선 내부의 사정이나 또 중국과는 직접 관계없는 서술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조선전뿐만 아니라 여느 나라 열전도 마찬가지다.

『한서』의 조선전은 『사기』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약간의 자구와 표현이 다를 뿐이다. 다만, 『한서』의 지리지에 현도군(玄菟郡) · 낙랑군(樂浪郡)의 호구수 및 속현수와 더불어 군지역의 조선의 생활상이 기록되었고, 이른바 기자(箕子)의 덕화(德化), 8조의 범금이 서술되어 있으며 민중이 유순하고 도(道)가 행해진다는 등 유교의 덕치주의적인 관념이 반영되어 있다.

『삼국지』 위지(魏志)에 ‘동이전’이라는 별도의 권명으로 조선전이 처음 기술되었다. 위 · 촉 · 오 삼국 중 위지에 ‘동이전’이 실린 것은 위나라가 요동으로 진출하여 만주를 거쳐 한반도까지 세력을 넓혔고 그와 관련된 기록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이전 서문에 위나라가 요동의 공손씨를 치고 낙랑 · 대방을 수복한 뒤에 고구려를 침범하여 동해에 이르렀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동이족에는 예법이 행해지고 있고 공자도 차라리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관심에서 동이전에는 부여 · 고구려 · 동옥저 · 읍루 · 예(濊) · 한(韓) · 왜인 등의 위치 · 지세 · 국력 · 통치형태 · 생활풍습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뒤 편찬된 『후한서』 「외이열전(外夷列傳)」에 동이전이 첫머리에 실려 있는데, 위지 동이전을 그대로 전재한 것에 불과하다. 다만, 후한시대의 기사를 약간 보충하여 부여 · 구려 · 예 · 한 · 왜의 기사 마지막에 후한대의 관리파견 등의 기사가 실려 있다.

『사기』 · 『한서』 · 『삼국지』 · 『후한서』 등 사사(四史) 이후 남북조에서 당나라 초까지 저술된 사서는 『진서(晉書)』 · 『송서(宋書)』 · 『남제서(南齊書)』 · 『양서(梁書)』 · 『위서(魏書)』 · 『북제서(北齊書)』 · 『주서(周書)』 · 『남사(南史)』 · 『북사(北史)』 · 『수서(隋書)』 등이 있는데, 『진서』 · 『송서』 · 『남제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당나라 때 편찬되었다.

남북조 당시 저술된 『송서』에는 당시 화이(華夷) 구별이 강조되던 사조를 반영하여 이만전(夷蠻傳)이라 통칭되었다. 일반적인 생활관련 기사는 없고 중국 측이 동이족의 왕으로 봉한다는 조서(詔書)나 조빙관련 내용이 전부다. 이는 『남제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당나라 때 저술된 『양서』에 신라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내용은 짧지만 신라의 위치, 진한으로부터 발전 경위, 관명, 물산 등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신라어의 몇 개 단위가 열거되어 있다.

북조의 정사인 『위서』에는 권명 없이 열전에 고구려 · 백제와 관련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들 나라에 대해 화이로 구분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위서』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워 접촉이 많았던 발해 · 고구려 계통의 씨족들이 북위로 이주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고구려 시조 주몽에 관한 설화는 이전 기록과 달라 주목을 받기도 한다. 백제전은 중국 측의 조서와 백제 측의 상표(上表)가 태반을 차지한다. 당나라 초기에 편찬된 『주서』에도 마찬가지로 이(夷) · 만(蠻)자를 사용하지 않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역전(異域傳)이라는 권명에 고구려 · 백제 내용이 담겨있다.

와이를 구분하는 않는 입장은 이연수(李延壽)가 지은 『북사』에도 답습되었다. 다만, 이연수는 『남사』를 저술할 때에 이맥전(夷貊傳)이라고 한 점과 대조를 보인다. 다만, 이러한 경향은 남조계통의 정사인 『송서』 · 『양서』에서 이만전(夷蠻傳), 제이전(諸夷傳)이라고 한 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수서』 이후에는 동이전에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역사가 기록되었다.

『남사』 · 『북사』 · 『수서』 등에는 다른 정사에 비해 조선전에 관한 내용이 훨씬 적다. 삼국지의 동이전을 대개 그대로 기술한 것이다. 다만, 『수서』 동이전에 실린 고구려 · 백제 관련 내용은 대부분 수나라의 책봉 조서이다. 때문에 수나라와 관계가 적었던 신라와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다. 『남사』 · 『북사』는 기존 정사들을 삭제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없지만, 신라 · 백제 · 왜 등과 관련된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 뒤 당나라의 역사는 천하의 역사라 불리기 때문에 『구당서』 · 『신당서』에는 조선전 내용도 충실하고 사건들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동이 제국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서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첫머리에 각국의 위치 · 관직 · 생활상 등이 기술되어 있는데, 중요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담겨 있다.

『송사』 이후 『명사』에 이르는 조선전은 내용이나 분량면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중간에 『신 · 구오대사』에 동이전이 있지만 내용이 지극히 짧고 이전 것을 그대로 따온 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송사』는 이민족인 원나라에 의해 편찬되었기 때문에 사이전(四夷傳) · 이만전(夷蠻傳) · 제이전(諸夷傳) · 이맥전(夷貊傳) 등으로 기술하지 않고 외국전으로 명명되어 이전과 차이를 보였다. 이는 그 뒤 『명사』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지리 · 물산 · 생활 · 풍습 등의 기술보다는 시사적인 사건에 대한 기술이 많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고려를 고구려 계승 국가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뒤 편찬된 『원사』 · 『명사』에서도 한국과의 조빙(朝聘) · 책봉(冊封) · 헌물(獻物) · 초유(招諭) · 사신왕래 등 사건의 기술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주변국들이 이미 중국적인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화 되었기 때문에 굳이 제도, 생활 풍습 등을 기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생활이나 풍습, 제도 등에 관한 책들이 저술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국역)中國正史朝鮮傳』(국사편찬위원회, 1986)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본 明ㆍ淸代 중국의 朝鮮觀 연구-‘中國正史 朝鮮傳’을 중심으로」(전세영,『한국정치학회보』45-5, 2011)
「中國歷代正史의 外國列傳-朝鮮傳을 中心으로-」(고병익,『대동문화연구』2,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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