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靑谿) 정종여(鄭鍾汝)가 그린 「지리산조운도(智異山朝雲圖)」는 구름에 싸인 지리산 연봉(連峰)의 광활한 풍광을 주제로, 준법(皴法)을 탈피하고 발묵(潑墨)과 서양화의 기법을 수용하여 웅장하게 묘사하였다. 형식적으로 8폭의 병풍이라는 고전적 형식을 사용한 점, 부감법에 의해 산의 전체 모습이 한 화면 안에 담기도록 구성한 점에서는 조선시대 금강산도에서 드러나는 전통적 시각의 특징을 보여 준다.
「지리산조운도」에서는 너비가 3.8m에 이르는 장대한 화면 전개와 함께, 먹의 유려한 농담(濃淡) 표현이 돋보인다. 새벽 운무가 짙은 지리산을 정확한 사생을 바탕으로 묘사하였는데, 세밀히 표현한 전경(前景)은 점차 멀어지는 공간감의 원경(遠景)과 대조를 이루며 직접 지리산의 산정(山頂)에서 조감하는 느낌을 준다.
안개 낀 영봉(靈峰)의 모습을 주제로 삼은 점에서는 요코야마 다이칸(横山大観, 1868~1958)이 자주 화폭에 담았던 「비가 그치다(雨霽る)」(1940)과 같은 후지산[富士山] 풍경, 정종여가 사사했던 이상범(李象範)이 「설악산」(1946)에서 선보인 웅장한 수묵 양식과 비견해 볼 수 있다.
한편 정종여는 경상남도 거창에서 출생하여 「지리산풍경」,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의 봄」 등 고향 주변의 가야산, 지리산을 그린 산수풍경화를 꾸준히 제작해왔다. 1942년에는 「금강산전망」을 이미 10폭 연폭병 방식으로 그렸으며, 특히 토성초등학교에서 보관중이던 정종여의 「지리산」은 「지리산조운도」와 유사한 주제와 화풍을 공유하여 동일한 시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지리산조운도」는 해방 전 국내에서 그린 정종여의 대표작이다. 화면의 오른쪽 하단 ‘지리산조운도 무자초추 청계(智異山朝雲圖 戊子初秋 靑谿)’라는 낙관에서 1948년 가을에 그린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