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강원도 화천에서 출생했다. 배화고등여학교에서 수학했고, 졸업하던 1942년에 최인규 감독과 배우 전택이가 공동으로 제작한 「마의 산」의 여주인공 모집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제작이 중단되자 약초가극단(若草歌劇團)에서 노래하는 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1950년 「놀부와 흥부」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으며, 「막나니 비사」(1955)에서는 사랑하던 망나니 ‘먹’(전택이)이 양반의 딸 ‘채’(이경희)를 짝사랑하자 그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술집 작부 ‘달’로 분했다. 단호하고 능동적인 하층민 여자로서 불만스러운 표정과 그 특유의 빈정거리는 말투로 ‘먹’을 다루는 노경희의 연기력은 “최고의 수준에 달한 것으로 절대의 찬사를 보내어 아낌없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빨치산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용공시비 끝에 몇 군데를 삭제하고서야 겨우 상영할 수 있었던 「피아골」(1955)에서 빨치산대원 애란 역을 통해 적극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며 개성적인 연기를 펼쳤다. 이규환 작 「춘향전」(1955)의 당돌하고 입심 좋은 ‘향단’, 교수 부인 ‘오선영’을 무도회장으로 이끄는 「자유부인」(1956)의 친구 등으로 1950년대 중후반 자유로운 풍속과 사회로 나온 당찬 여성상을 대변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역할은 때로는 능란한 사교술과 명철한 두뇌로 지적인 매력을 발하는 「실낙원의 별」(1957)의 여대생 고영림 역, 영악하고 심술궂게 사랑을 추구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여자 최욱진 역이나, 당대 톱스타였던 최은희, 이경희와 함께 공동 주연한 「삼여성」(1959)과 같은 또 다른 대표작들로 표출되어 나왔다. 「느티나무있는 언덕」(1959)에서 의지력 강한 여선생으로 분했던 노경희는 1969년 「어느 하늘 아래서」를 마지막으로 20년간 휴식기를 보내다 1989년 「빨간 여배우」로 스크린에 복귀했지만 1995년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제1회 금룡상 여우주연상과 제1987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