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민영소에게 보낸 안부편지로, 현재까지 유일하게 전하는 한문편지이다.민영소는 1881년에 정시별시문과에 합격한 후 규장각 대교가 되었고, 1883년에 승정원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며, 1884년 이후 이조 참의, 성균관 대사성, 춘천 부사, 이조참판, 부제학, 형조 판서, 광주부유수, 내무부협판, 이조판서, 예조판서, 좌참찬, 판의금,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그가 1882년 3월 27일에 세자빈궁에 별입직(別入直)하라는 명을 받은 점을 참고하면, 민영소가 야간 당직 근무를 하는 벼슬(대교 또는 동부승지)에 있을 때 명성황후가 보낸 어찰로 짐작된다.
봉투에는 ‘평안희보(平安喜報)’라는 한자가 찍혀 있고, 그 위에 “즉송 내함일편(卽送 內函一片) 민대인 영소관인 승계(閔大人 泳昭官印 升啓) 금중평서(禁中平書)”라고 적혀 있는데 ‘영소관인(泳昭官印)’은 글자 크기가 작고, 두 줄로 적혀 있다. 크기는 세로 15.5㎝, 가로 7.8㎝이다.
속지는 당지(唐紙)로 엷은 담홍색이며 ‘만수무강(萬壽無疆)’, ‘만년답고(萬年多福)’이라는 한자가 전서체로 찍혀 있다. 크기는 세로 22.8㎝, 가로 12.8㎝이다.
발신일이 적혀 있지 않아서 정확하게 언제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찰의 본문은 “야간직리안승 원념부천이 여유부일(夜間直履安勝 遠念不淺耳 餘留不一:야간 당직 근무를 하는데 편안한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염려 적지 않다. 나머지는 일일이 다 적지 못한다.)”로 되어 있다. 본문에서 당직 근무 중임을 뜻하는 표현을 ‘직중(直中)’이라고 썼다가 ‘중(中)’을 ‘리(履)’로 고쳤다.
명성황후의 한문 편지는 민영소에게 보낸 이 편지가 유일한 것이다. 이 한문 편지는 명성황후의 서체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야(夜), 직(直), 안(安)’ 등의 글자에서 역동적인 미감과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명성황후의 서체는 친필로 쓴 140여 통의 한글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