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가 보낸 한글 편지는 민영소(閔泳昭)에게 보낸 144통, 민응식(閔應植)·민병승(閔丙承) 부자에게 보낸 10통, 이모 한산이씨(韓山李氏)에게 보낸 20통, 윤용구(尹用求) 집안에 보낸 8통 등 총 182통이 있다.
민영소에게 보낸 것 중 134통과 민응식·민병승 부자에게 보낸 10통은 친필이고, 나머지 38통은 궁녀가 대필한 것이다.
민응식·민병승 부자에게 보낸 편지 10통은 민병승이 성첩하여 첩명을 『명성성후어필(明成聖后御筆)』이라고 하고 한문과 한글로 발문을 썼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모 한산이씨에게 보낸 편지 20통은 한산 이씨의 증손자인 이용정(李用政)이 성첩하여 첩명을 『명성황후어찰(明成皇后御札)』이라고 하고 서문을 썼다. 현재 외암 민속 마을에 거주하는 이득선 씨가 소장하고 있다.
민영소에게 보낸 편지 중 16통은 명성황후생가에서 구입하여 『명성황후찰간(明成皇后札簡)』이라는 이름으로, 4통은 여주박물관에서 구입하여 『명성황후어필(明成皇后御筆)』이라는 이름으로 각각 성첩하였다.
국립고궁박물관은 73통을 구입·소장하면서 『명성황후의 한글편지와 조선왕실의 시전지』라는 도록을 펴냈고, 국사편찬위원회는 2통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나머지는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윤용구 집안에 보낸 편지는 윤용구의 장녀 윤백영이 소장했던 것을 그녀의 후손과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
명성황후의 한글편지는 수신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민영소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대부분 수신자의 안부를 묻고 왕과 세자 및 자신의 안부를 적은 뒤 그때그때의 용건을 말하고 있다. 안부 내용에서 대부분 자신의 안부에 앞서 왕과 세자의 상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는 명성황후가 왕과 더불어 자신의 아들인 세자의 안녕이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용건 중에는 명성황후가 인사권이나 정사에 관여하는 내용이 자주 나타난다. 민응식과 민병승 부자에게 보낸 편지는 갑오농민운동 발발 후 수신자 민응식과 민영준(민영휘), 민형식, 민치헌 등이 유배를 당한 일과 청일전쟁의 긴박한 상황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모 한산 이씨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대부분 이모가 청탁한 내용에 대한 처분이나 반응을 엿볼 수 있고, 윤용구 집안에 보낸 편지들은 거의 다 단순하고 의례적인 안부 편지들이다.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에 이르는 동안 명성황후와 궁궐의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명성황후가 관리의 인사와 정사에 어떤 식으로 관여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어 당대의 역사적 사실과 명성황후에 대한 인식을 심화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울러 친필 편지는 황후의 개성적인 서체를 확인할 수 있어 한글 서예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상궁의 대필 편지는 완숙한 한글 궁체의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