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보극장 ()

영화
단체
1957년 개관한 서울특별시 중구 소재 영화 상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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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57년 개관한 서울특별시 중구 소재 영화 상영관.
개설

1957년 8월 26일 1천 2백석 규모로 개관한 한국영화 전용 극장이다. 당시에는 외국영화 전용관과 한국영화 전용관이 나뉘어 있어서, 서울에 있는 8개 극장 중 명보극장은 국도극장, 국제극장과 더불어 한국영화 전용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70년대부터 외국영화를 같이 상영하게 되었고, 한국영화는 물론 외국영화도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1994년 한국 최초의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으로 변모하였고, 상영관 장치나 설비도 최첨단으로 갖추어 다른 영화관들에 자극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대형 복합상영관들의 난립과 경쟁 속에서 상영공간을 축소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였으나 결국 2008년 폐관하였다. 현재는 (재)신영균 예술문화재단에서 ‘명보아트홀’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예술 공연과 ‘실버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1957년 8월 26일 개관하였고 1977년 영화배우 신영균에 의해 인수되었으며, 1994년 ‘명보프라자’로 개명하면서 국내 최초 복합상영관으로 개장하였다. 2001년 내부 개보수와 더불어 ‘명보극장’으로 개명하여 상영을 계속하였으나 복합상영관의 대거 진출과 경쟁으로 인한 경영 악화로 2008년 4월 30일 폐관하였다. 2009년 복합 문화 공간인 ‘명보아트홀’로 재개관하여 실버극장을 만들어 영화 상영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 공연의 장소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기능과 역할

명보극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으로 각인되었다. 작품성이 뛰어나 좋은 평가를 받았어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외국영화, 예를 들어 「빠삐용」(1973)이나 「지옥의 묵시록」(1979) 등을 상영하였고, 한국영화 중에서도 「내가 버린 여자」(1978), 「속(續) 별들의 고향」(1979), 「미워도 다시 한번 ‘80」(1980) 등은 3년 연속 한국영화 최다관객 동원을 기록하는 등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작품성과 관객들의 시대적 욕구를 잘 반영한 영화의 상영은 참신하고 앞서가는 이미지를 만들었고, 이는 극장 내부의 인테리어와 설비에서도 다른 극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복합상영관 시스템의 도입, 무인 자동 영사 시스템, THX와 돌비 시스템 등 한국 최초의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 설치 등에서도 영화 작품만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인 부분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화관에 상영되는 작품 이외의 다른 영화들을 접할 수 없었던 시기에 상업적인 고려와는 별개로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관객에게 제공한 것은 이후 발생하는 시네마테크의 기능을 일부 선구적으로 행하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극장 설비에 있어서 관람환경을 고려하고 양질의 감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상영관 운영이라는 면에서 관객의 욕구와 최적의 감상을 우선시하는 모델로서 기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명보아트홀(www.myungbo.com)
집필자
유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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