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5월 12일 경기도 인천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했다. 보통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일본 도쿄에서 연극수업을 받고 1936년 경 귀국하였다. 귀국 후 1년간 창작 활동을 하다가 1938년에 극연좌에서 번역극 「뻐꾹새」, 「목격자」를 연출하였고, 이후 극연좌 3회 공연과 4회 공연에서 연출을 맞았다. 극연좌 4회 공연 이후 2차 분규가 발생하자 이서향은 탈퇴하여 협동예술좌로 이적하는데, 이것이 그의 짧은 친일단체 가담 경력이다. 이후 1939년에 창단된 고협에 초빙되었고 「해연」, 「쾌걸 윙」을 연출했으며, 특히 「쾌걸 윙」은 김영수의 고평을 받았다.
1942년 제1회 국민연극경연대회에서 극단 성군의 연출가로 「산돼지」를 연출하였으며, 이 작품은 ‘연출가의 솜씨가 빛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해방 직후에는 낙랑극회에서 「봇똘의 군복」을 연출했으며, 이 작품은 ‘해방 1주년 -기념 공연’으로 선전되었고, 제2회 3·1연극제에 출품한 「태백산맥」은 그의 주목할 만한 연출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군중신의 처리가 능숙하고, 극적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에 탁월했다.”는 평을 받았다.
1948년 4월 초에 월북하여 북한 국립연극단의 전신인 국립연극극장 연출가로 근무하면서 「춘향전」을 연출하였다. 한국전쟁기에는 종군연출가로 활동하였고, 전후에는 현재 국립연극단의 전신인 국립연극극장 예술부총장으로 많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대표 연출작품에는 김재호 작 「생명을 위하여」(1959), 김형구 작 「남녘땅에서」(1959), 김재호 작 「장자강」(1959), 김일성이 극찬한 「붉은 선동원」(1961), 이응렬 작 「아득령」, 리동춘 작 「위대한 힘」 등이 있다. 1957년부터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해 북한의 연극인들을 키워 냈으며, 1964년부터는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문학예술지도부장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 7월 19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무대의 독자성을 이해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연극성을 동시에 추구한 연출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