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보살상은 높이 85.2㎝. 보살상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보관(寶冠)은 따로 제작하여 머리 위에 올려놓은 상태이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에서 광무(光武) 9년(1905)명 다라니(陀羅尼),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 발원문, 금판(金板) 등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1897년 지리산 기슭의 경상도 지역에서 지금의 사찰로 옮겨 오면서 개금(改金)하였다고 한다.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의정부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과 같은 크기와 형식의 목조보살입상이 있어서, 두 보살상이 원래 삼존상의 협시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보살입상은 양 어깨에 천의를 걸치고, 하반신에 치마를 입고 머리엔 보관을 쓴 채 연화좌 위에 서 있다. 몸에 비해 머리가 약간 크며,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긴 모습을 하고 있다.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며, 머리도 살짝 숙인 자세이다.
머리에 비해 큰 보관은 여러 가지 꽃문양을 투각으로 새겨 장식한 화관(花冠)이다. 정수리에는 머리카락을 묶은 보계(寶髻)가 있으며, 앞뒤의 머리카락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옆머리는 귀 앞으로 흘러내린 두 가닥의 머리카락이 귓불을 가로질러 귀 뒤에서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하나가 되어 꼬인 다음 어깨 앞쪽에서 두 가닥으로 펼쳐진다.
목조보살입상의 상호는 방형에 가까운 둥근 모습으로서 오관(五官)은 얼굴 중앙에 오목조목하게 집중되어 있다.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눈썹과 부은 듯한 눈두덩, 양끝으로 치켜 올라간 작은 눈, 큰 물방울 같이 생긴 코, 짧고 넓은 인중, 살포시 다문 작은 입, 꽃문양 귀걸이를 하고 있는 큰 귀를 갖추고 있다. 양쪽 볼은 공기를 머금은 듯 살짝 부풀어 있다.
오른손은 가슴 옆까지 들어 올려 엄지와 중지를 교차하였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오른쪽 사선으로 향하게 한 뒤 엄지와 중지를 살짝 교차하였다. 손가락을 길고 손마디와 손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목조보살입상의 가슴에는 법의 양옆에 고정시킨 꽃문양의 가슴장식이 있으며, 양 팔목에는 팔찌를, 상박부에 또 다른 팔찌를 착용하였다. 양 무릎 사이에도 장식이 표현되어 있다. 보살상은 법의(法衣)와 군의(裙衣),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는 것은 물론, 승각기(僧脚崎)와 같은 복부를 감싸는 또 다른 법의를 뒤쪽에서 두른 다음 배 앞에서 묶었다. 그 밑으로 U자가 반복되는 법의 자락이 무릎 위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그 아래엔 군의 자락이 양발 사이와 옆으로 흘러내린다. 발은 발톱까지 표현하였지만 형식화되어 있다. 한편 양쪽 팔을 감싸고 있는 천의는 대좌 옆까지 내려와 있다. 법의와 천의는 과장된 느낌이 없지 않다.
대좌는 이중의 복판(複瓣) 연화문으로 된 앙련좌(仰蓮座)이다. 연꽃 사이에 간엽(間葉)을 새겨 넣는 등 조각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전체적인 비례와 얼굴 표현, 입체적인 조각 기법 등 조형적인 특징이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목조보살입상과 같아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목조보살입상이 1620년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 보살상도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둥근 얼굴에 오관이 중앙으로 몰려 있으며, 양옆으로 치켜 올라간 눈과 큰 물방울 같이 생긴 오뚝한 코 등 조선 전기 보살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걸이 장식으로 가슴 장식을 표현하거나 배 앞에 따로 입고 있는 법의는 고려시대 보살상에서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다.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은 조성 배경을 알려 줄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양식적 · 도상적 특징으로 볼 때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목조보살입상이 삼존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고려시대 보살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17세기 전반의 보살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