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4555㎝, 최대 폭 3138㎝. 나한상 16존 중에서 6존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며, 모두 나무로 조각한 다음 채색을 입혔다. 목삼존불상의 왼쪽 제2상은 오른손을, 제4상, 제6상, 제8상은 두 손을 따로 제작하여 끼운 상태이다.
봉은사 목십육나한상은 1745년에 조성된 봉은사 목삼존불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7년 지정)과 양식적으로 같아 함께 조성된 것이다. 한편 영산전 후불화(後佛畵)에 기록된 1895년 화기(畵記)는 후대에 만들어진 6존의 나한상 중 2존이 이때에 후보되었을 가능성을 높여 준다.
목십육나한상은 봉은사 목삼존불상의 좌우에 각각 8존씩 봉안되어 있다. 나한상은 석가모니 열반 후, 이 세상에서 붓다를 대신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십육나한상은 불상의 왼쪽에 홀수 번호의 나한상이, 오른쪽에 짝수 번호의 나한상이 배치된다. 봉은사 목십육나한상도 예외는 아니어서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가 분실되고 후보되는 과정에서 나한상의 순서가 뒤섞여 있다.
십육나한상은 모두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왼쪽 제1상은 용머리가 새겨진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젊은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비구형의 머리에 합장한 채 원령(圓領)의 내의를 입고 있다. 암좌(巖座)에 “삼(三)”자가 새겨진 바로 옆의 나한상은 오른쪽 무릎을 세운 윤왕좌(輪王坐) 자세로서 두 손은 세워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암좌에 “칠(七)”자가 새겨진 왼쪽 제4상은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는데, 왼손으로 염주를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손가락을 구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암자에 “구(九)”자가 새겨진 왼쪽 제5상은 두 손을 마주 포개어 배 앞에 둔 단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암좌에 “십일(十一)”이 새겨진 왼쪽 제6상은 왼쪽 무릎을 세운 윤왕좌의 자세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경권(經卷)를 잡고 있다. 암좌에 “십오(十五)”가 새겨진 제8상은 두 손 위에 경책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오른쪽 제1상은 가사의 앞섶을 풀어서 상반신을 드러낸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으며, 오른손으로 동자(童子)를 안고 있다. 암좌에 “사(四)”자가 새겨진 오른쪽 제2상은 가사 위에 두건을 쓴 모습으로 두 손은 옷 속에 넣었다. 오른쪽 제4상은 두 손 위에 경책을 펼쳐 놓은 모습이다. 오른쪽 제7상도 두 손 위에 경책을 올려놓은 모습이며, 암좌에 “십육(十六)”이 새겨진 제8상은 원래는 지물(持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왼쪽 제3상, 오른쪽 제3상, 제5상, 제6상은 근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오른쪽 제1상과 제7상은 1895년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존상들은 봉은사 목삼존불상과 함께 1745년에 조성되었다.
봉은사 목십육나한상은 몇 가지의 기본 틀 속에서 부분적으로 변화를 준 듯 획일적이고 경직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 번에 걸쳐 6존이 후보되었기 때문에 십육나한상의 완전한 구성도 아니다. 그러나 나머지 10존은 1745년의 기년명 나한상으로서 조선시대 나한상 연구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18세기 이후 소규모 영산전의 존상 봉안 형태와 나한 신앙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