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상 높이 205㎝, 무릎 폭 148㎝. 나무로 전체 윤곽을 만들고 주름이나 살집 등을 표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흙을 활용하여 완성한 불상이다. 높이 2m가 넘는 비교적 큰 규모의 불상으로, 낮고 넓은 무릎과 늘씬한 상체를 가지고 있어 장대한 형태미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대한 형태미는 17세기 전반기의 대형 소조불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아직까지 초창과 관련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이 불상의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2005년 2월에 발견된 복장물에서 1741년(영조 17) 명부전의 시왕상 중수와 함께 개금불사를 시행했다는 복장기와 1775년 개금불사를 시행했다는 중수기문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이 불상은 1741년과 1775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41년 중수에는 철관스님을 증명으로 취성, 사인, 계잠, 성순, 도환, 계초가 화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775년 개금 중수에는 백월, 색민, 정암 등이 참여하였다. 특히 중수 개금에 참여한 색민은 우수한 화적을 많이 남긴 불화승이다.
불상의 머리는 반달모양을 이루는데, 이마의 발제선(髮際線)에서 정상계주까지의 높이가 낮은 편이고 육계의 윤곽도 불분명하다. 17세기 후반의 불상에서 보이는 높은 반구형의 머리와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머리의 중앙과 정상에는 반달모양의 중간계주와 반구형의 정상계주를 나타냈다. 둥근 이륜과 짧은 귓불을 가진 귀는 ‘?’형태이며, 귓구멍은 열쇠구멍 형태를 띠고, 상하각(上下脚)의 연골은 쐐기모양으로 짧고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얼굴은 양악(兩顎)에 살집이 많아 둥글넓적하며, 넓은 이마와 양미간에는 동그랗게 돌출시킨 백호를 표현하였다. 날렵하게 휘어진 눈썹은 삼각형의 오뚝한 콧날로 이어지고 눈초리는 약간 치켜 올려 시선은 사바세계를 향하게 하였다. 인중은 짧으며 얇은 입술에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짧은 목에는 삼도의 윤곽이 드러나 있고, 가슴의 쇄골선은 둔중하게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착의법은 상의 위에 대의 자락을 오른쪽에 살짝 걸친 변형 편단우견에 이중착의로 표현되었다. 불의(佛衣)는 장대한 신체의 윤곽을 따라 다소 두껍게 입었으며, 수직의 주름을 같은 간격으로 새겨 넣어 장대한 신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왼쪽 측면으로 흘러내린 주름은 낙타의 등 모양으로 크게 M자형의 주름을 이루고 있고, 뒤로 넘긴 대의자락은 나뭇잎 모양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밋밋한 가슴에 군의(裙衣)의 윗단이 수평으로 처리되었고 복부는 볼록하게 처리하여 신체의 윤곽을 드러냈다.
무릎은 넓고 낮으며, 오른발을 앞으로 하여 앉은 길상좌이다. 안쪽으로 포갠 왼발은 대의자락 아래로 윤곽만을 표현하였다. 무릎 앞으로는 긴 나팔모양의 특색 있는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에 3, 4단의 수평주름이 펼쳐져 있다. 이와 같은 무릎 주름은 1606년에 수화원 각민(覺敏)이 제작한 공주 동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나 1612년 진주 월명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1614년 구례 천은사 목조관음 · 대세지보살좌상 등과 비교된다. 또한 다소 무표정하고 형식화된 얼굴과 주름의 표현 방식, 장대한 신체 비례 등은 1629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나 1633년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수인은 두 손 모두 손가락에 리듬을 타듯 엄지와 중지를 둥글게 맞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이며, 손바닥에는 ‘キ’형의 손금을 음각하였다. 손은 따로 조각하여 둥글게 홈을 판 팔목에 끼우도록 하였다.
이 불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현진(玄眞)이 1607년에 제작한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초기의 작품이라는 조각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목조 기법과 소조 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제작한 불상으로 기법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규모면에서도 높이가 2m가 넘는 대형 불상에 속하는데, 이는 임진왜란과 정묘재란 등 전란 이후 재건불사 과정에서 조성된 기념비적 작품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비록 절대 연대를 알려 주는 기록은 없지만 1741년의 개금 사실을 남기고 있어 불상의 하한 연대를 설정할 수 있으며, 양식상 17세기 전반기 현진의 작풍과 친연성이 강하여 17세기 전반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