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량(申汝樑, 1564~1606)의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전라도 고흥 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부장으로 행주대첩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에는 경상우도수군우후(慶尙右道水軍虞候)로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고금도와 당포 등 남해안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뒤인 1603년 3월 전쟁 유공자에 대한 포상 논의가 있었다. 다음 해에 종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시키는 상가교서를 내려줌으로써 전쟁에서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이때 승첩도(勝捷圖)를 그려 함께 하사하였다.
상가교서는 공이 있는 관원을 포상하기 위해 가자(加資)할 때 내려주는 문서이다. 크기는 가로 248.5㎝, 세로 78.5㎝이고, 저지(楮紙)로 되어 있으며, 문서의 마지막에 '만력(萬曆) 32년 7월 17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어 교서를 내린 시기를 알 수 있다.
시면의 형식은 "교(敎)~상가서(賞加書)"라 하여 상가교서임을 명시하였다. 기두어는 교서의 형식에 따라 "왕약왈(王若曰)"로 시작되며, 결사는 “그러므로 이에 교시하노니 마땅히 다 알아야 한다[故玆敎示 想宜知悉].”로 맺고 있다. 교서에는 신여량이 1604년 당포해전에서 활약한 내용과 상세한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문서를 발급한 시기를 명시하였다.
전공을 평가하여 발급한 것으로, 수취자의 생전에 발급된 교서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17세기에 내려진 국왕의 교서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2017년 5월 8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