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임고서원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 및 함 ( )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35년(영조 11) 영천 임고서원에서 화가 한두공에게 의뢰해 제작한 정몽주의 초상화와 그 보관함.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35년(영조 11)
작가
한두공(韓斗拱)
소장처
임고서원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영천 임고서원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 및 함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9년 08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영천 임고서원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 및 함은 1735년(영조 11)에 임고서원에서 한두공이라는 지역 화가에게 이모(移摹) 작업을 의뢰해 제작한 정몽주의 초상화와 그것을 보관한 함이다. 정몽주 초상화 중에서 이모 작업의 주체, 이모 연도, 화가 등이 정확히 밝혀진 드문 사례의 작품이다. 2019년 8월 26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의
1735년(영조 11) 영천 임고서원에서 화가 한두공에게 의뢰해 제작한 정몽주의 초상화와 그 보관함.
제작 배경

임고서원에서 지역 화가인 한두공(韓斗拱)에게 정몽주 초상화 제작을 의뢰하였다.

내용

정몽주는 고려를 대표하는 충신이자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은 1735년(영조 11)에 제작된 이모본 초상화이다.

정몽주 봉사손가(奉祀孫家)에서는 1390년(공양왕 2)에 정몽주가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었을 때 고려 왕조로부터 수여받은 초상화를 조선 개국 이후로 가묘(家廟)에 보관해 오고 있었다. 16세기 중반에 경상도 영천에 임고서원이 설립될 때 최초로 이 초상화의 이모본이 제작되었다. 이후 이 초상화의 이모 작업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20세기 초까지 각종 문헌에서 분명히 확인되는 정몽주 초상화의 이모 작업 횟수는 최소 10차례에 이른다(1555년, 1575년, 1619년, 1629년, 1677년, 1735년, 1751년, 1768년, 1769년, 1912년). 이 중 임고서원에서 5차례의 이모 작업이 진행되었다.

먼저 1555년(명종 10)에 임고서원에서는 가묘 소장본, 즉 1390년 본을 모본(母本)으로 첫 이모본 초상화를 제작했다. 1619년(광해군 11)에는 경상감사 박경신(朴慶新)이 화사 권응(權鷹)을 시켜 임고서원 소장본, 즉 1555년 이모본을 한 본 모사케 했다. 정몽주의 봉사손 정준(鄭儁)은 1620년(광해군 12)에 이때 완성된 이모본을 자신의 가묘로 가져가 봉안하였다. 이때 정준이 이 이모본을 가져간 것은 정몽주 봉사손가 가묘에 몇백 년 동안 봉안되었던 1390년 본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새로이 한 본을 가묘에 봉안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1629년에 영천의 사림(士林)과 영천군수 박안효(朴安孝) 등은 임고서원본의 이모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때 이들은 진사 김식(金埴)을 불러 임고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1555년 본을 이모하게 하였다.

다음으로 1735년에 임고서원의 유림은 경상도 경산에 거주하는 화가 한두공을 불러 다시 정몽주 초상화 이모본을 제작하였다. 마지막으로 1912년 8월에는 영천 지역 사림이 경주에 거주하는 화사 김광현(金匡鉉)을 불러 1629년(인조 7) 본을 모본으로 이모본 한 점을 제작하였다.

임고서원에서 이루어진 정몽주 초상화의 이모 작업 현황을 이처럼 상세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임고서원 소장 『임고서원지(臨皐書院誌)』의 「고왕록(考往錄)」에 그 현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임고서원에서는 1629년 본(보물), 1735년 본, 1912년 본을 소장하고 있다. 임고서원에서 제작했던 1555년 본은 현재 임고서원이 소장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1654년에 정몽주의 적장손 정간(鄭侃)이 경기도 용인의 충렬서원(忠烈書院)으로 이 초상화를 이봉해 갔기 때문이다.

1735년 본, 즉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의 우측 하단에는 “영묘을묘모본(英廟乙卯摹本)”이란 글이 적혀 있다. 이로써 이 초상화가 바로 1735년에 임고서원에서 한두공을 시켜 제작한 본임을 알 수 있다. 1735년 당시에는 임고서원에 1629년 본만 소장되어 있었으므로 1735년 본은 1629년 본을 바탕으로 이모한 본으로 파악된다.

형태 및 특징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에서 정몽주는 오사모에 담청색의 단령을 착용하고 허리에는 금대(金帶)를 두른, 그리고 공수 자세로 교의에 앉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의 얼굴은 옅은 살색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이목구비는 물론 팔자주름 등의 주름은 갈색의 선으로 표현되었다.

이 초상화의 인물, 복식, 교의나 족좌대 등의 표현 방식이 전체적으로 1629년 본의 것과 매우 유사하므로 이 초상화는 1629년 본을 매우 충실히 이모한 본으로 평가할 수 있다. 화면 곳곳에서 안료의 박락이나 비단 결실이 확인될 정도로 그 훼손 정도가 심해 이 초상화의 원래 색과 필선들을 정확히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임고서원에서 「영조을묘모본 정몽주 초상」은 검은색 칠이 된 궤(櫃)에 넣어져 보관되어 왔다. 이 흑장궤는 매우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장식은 많지 않다. 다만 이 궤가 1735년 이 초상화 제작 당시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의의 및 평가

정몽주 초상화 중에서 이모 작업의 주체, 이모 연도, 화가 등이 정확히 밝혀진 드문 사례의 작품이다. 또한 한 서원에서 향사 대상 인물의 초상화를 반복적으로 이모한 정황을 자세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높은 가치가 있다. 2019년 8월 26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임고서원지(臨皐書院誌)』

단행본

포은학회 엮음, 『포은선생유적대관』(민속원, 2011)

논문

강영주, 「임고서원 소장 한두공 제작(1735년) 정몽주 영정 소개」(『포은학연구』 24, 2019)
이성훈,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의 제작 및 봉안 연구」(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집필자
이성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