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명 초상 ( )

회화
작품
문화재
1728년(영조 4) 조문명이 분무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수여받은 초상화.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28년
작가
진재해(奏再奚)
소장처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서울특별시
종목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2017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대현동, 이화여자대학교)
내용 요약

「조문명 초상」은 조문명이 1728년(영조 4) 3월에 일어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자 녹훈도감에서 조문명에게 그려 준 초상화이다.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1728년(영조 4) 조문명이 분무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수여받은 초상화.
제작 배경

「조문명 초상」은 조문명(趙文命, 1680~1732)이 1728년 3월에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자 녹훈도감(錄勳都監)에서 조문명에게 수여할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분무공신에는 조문명과 1등에 책록된 오명항을 포함해 15명이 녹훈되었으며, 현재 1728년에 제작된 분무공신상은 조문명을 포함해 오명항, 박문수(朴文秀), 김만중(金重萬), 이만유(李萬囿), 권희학(權喜學), 박동형(朴東亨) 등 7명의 것이 전한다.

내용

공신상 제작에는 진재해(奏再奚), 박동보(朴東普), 함세휘(咸世輝), 허숙(許淑), 김세중(金世重), 양기성(梁箕星), 김두량(金斗樑), 장태흥(張泰興) 등 총 9명의 화원이 참여하였다. 「조문명 초상」은 분무공신상 제작에 참여했던 화원 중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713년(숙종 39) 숙종 어진 도사 작업 때에 주관화사로 참여한 이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조문명 초상」의 우측 상단에는 “영묘조 좌의정 풍릉부원군 학암 조공의 초상화. 휘는 문명, 자는 숙장, 시호는 문충이다[英廟朝, 左議政, 豊陵府院君, 鶴巖, 趙公眞, 諱文命, 字叔章, 諡文忠].”라는 글이, 그 하단에는 “병조판서 때의 작품이다[兵曹判書時作].”라는 글이 각각 적혀 있다. 두 글의 서체가 동일해 두 글은 동일 시점에 적힌 것으로 보이며, 영묘의 묘호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서사 시점은 적어도 정조 대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명 초상」에서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머리에 오사모를 착용했으며, 몸에는 문신 당상관(堂上官)이 사용할 수 있었던 쌍학 문양의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정2품 관리가 착용하는 금대(金帶)를 매었다.

형태 및 특징

이 초상화의 화가는 굵기가 매우 일정한 갈색 선으로 조문명의 이목구비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어 안면을 전반적으로 채색한 데 이어 주1으로 코와 눈, 귀, 미간, 인중 등에 명암을 넣었다. 이를 통해 그는 최소한의 필선 사용과 채색만으로 조문명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이와 같은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 구사와 채색법은 복식 표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의의 및 평가

「조문명 초상」은 조선시대 마지막 공신호인 분무공신에 책훈된 공신들을 위해 제작된 초상화로서 또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초상화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원전

『분무녹훈도감의궤(奮武錄勳都監儀軌)』

단행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편, 『조선의 공신』(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2)

논문

강관식, 「공적 초상화와 사적 초상화-진재해 필 조문명의 〈분무공신상〉과 〈학암무송상〉을 중심으로」(『미술사와 시각문화』24, 2019)
주석
주1

동양화에서, 화면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대어 몽롱하고 침중한 묘미를 나타내는 기법.    우리말샘

집필자
이성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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