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명 초상」은 조문명이 1728년(영조 4) 3월에 일어난 무신란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녹훈되자 녹훈도감에서 조문명에게 그려 준 초상화이다.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신상 제작에는 진재해(奏再奚), 박동보(朴東普), 함세휘(咸世輝), 허숙(許淑), 김세중(金世重), 양기성(梁箕星), 김두량(金斗樑), 장태흥(張泰興) 등 총 9명의 화원이 참여하였다. 「조문명 초상」은 분무공신상 제작에 참여했던 화원 중 진재해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713년(숙종 39) 숙종 어진 도사 작업 때에 주관화사로 참여한 이력을 가진,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다.
「조문명 초상」의 우측 상단에는 “영묘조 좌의정 풍릉부원군 학암 조공의 초상화. 휘는 문명, 자는 숙장, 시호는 문충이다[英廟朝, 左議政, 豊陵府院君, 鶴巖, 趙公眞, 諱文命, 字叔章, 諡文忠].”라는 글이, 그 하단에는 “병조판서 때의 작품이다[兵曹判書時作].”라는 글이 각각 적혀 있다. 두 글의 서체가 동일해 두 글은 동일 시점에 적힌 것으로 보이며, 영묘의 묘호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서사 시점은 적어도 정조 대 이후인 것으로 추정된다.
「조문명 초상」에서 조문명은 표범 가죽이 깔린 교의에 앉아 공수를 하고 발은 족좌대에 둔 채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머리에 오사모를 착용했으며, 몸에는 문신 당상관(堂上官)이 사용할 수 있었던 쌍학 문양의 흉배가 부착된 단령을 입고 정2품 관리가 착용하는 금대(金帶)를 매었다.
이 초상화의 화가는 굵기가 매우 일정한 갈색 선으로 조문명의 이목구비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이어 안면을 전반적으로 채색한 데 이어 선염법(渲染法)으로 코와 눈, 귀, 미간, 인중 등에 명암을 넣었다. 이를 통해 그는 최소한의 필선 사용과 채색만으로 조문명의 얼굴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이와 같은 섬세하고 정교한 필치 구사와 채색법은 복식 표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조문명 초상」은 조선시대 마지막 공신호인 분무공신에 책훈된 공신들을 위해 제작된 초상화로서 또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진재해가 그린 초상화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2017년 12월 7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