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두 위성공신 교서 및 초상은 1613년(광해군 5)에 한천두가 위성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국가로부터 수여받은 교서와 초상화이다.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위성공신의 내용과 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광해군 대의 희귀한 교서이다. 「한천두 초상」은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었고 뛰어난 표현기법을 보여주는데,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2017년 8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한천두(韓天斗)는 임진왜란 때 광해군을 호종한 공으로 1613년(광해군 5)에 위성공신(衛星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이때 총 80인이 위성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광해군 대에 내려진 이 4개의 공신호는 모두 삭훈(削勳)되었다.
「한천두 초상」은 1613년에 한천두가 위성공신에 책록되었을 때 공신도감에서 제작하여 수여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천두 위성공신 교서」는 「한천두 초상」과 함께 전해져 온 교서로 한천두가 위성공신에 책록될 때 국가로부터 받은 것이다.
「위성공신 교서」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위성공신의 내용과 구성을 모두 확인할 수 있고, 한천두에게 내려준 경제적 특전이나 관직의 세습 등 공신의 우대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천두 초상」에서 한천두는 소나무 아래에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의 문양이 수놓아진 흉배(胸背)가 부착된 단령을 착용했으며 허리에는 삽은대(鈒銀帶)를 찼다. 호랑이 흉배는 무신의 것이고 삽은대는 정3품 관리의 품대(品帶)이다. 이 초상화에서 한천두의 안면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눈 주변의 주름선이나 엉켜 있는 모양의 수염은 특히 세밀하게 그려졌으며 안면은 살색으로 매우 담백하게 채색되어 있다.
「한천두 초상」은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功臣像)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광해군 재위 중인 1613년에는 4개의 공신호가 동시에 내려져 162명이 공신에 책록되었다. 그 결과 이 해에 제작된 공신상은 오늘날까지 적지 않은 수가 전한다. 「 유근 초상」(보물), 「 유숙 초상」(보물), 「 이성윤초상」(보물), 「 전윤효전초상」(보물), 「 임장초상」(보물) 등이 그때 제작된 대표적 공신상들이다.
이 초상화들은 모두 비슷한 형식을 보인다. 각 인물은 좌측을 향해 있으며 또한 흉배가 부착된 단령과 품대를 착용하고 공수를 한 채 채전 위에 놓인 교의에 앉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식은 선조~인조 대에 제작된 공신상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해군 대의 공신상에서 주로 확인되는 표현 요소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광해군 대의 공신상에서 단령의 트임 사이로 보이는 녹색, 홍색 혹은 청색의 단령 안감 및 단령 안에 입은 포(袍)는 삼각형 모양으로 중첩된 모습을 보인다.
선조 혹은 인조 대의 공신상 대부분에는 원호(圓弧) 형태의 안감이 보이지만 광해군 대에 제작된 초상화에는 이 원호 형태의 안감이 없다. 「한천두 초상」에는 이러한 광해군 대의 공신상 형식이 모두 확인된다.
「한천두 초상」의 현재 보존 상태는 매우 좋지 못하다. 특히 화면 오른쪽 부분 곳곳이 찢어져 있으며 왼쪽 상단에도 비단이 결실된 부분이 많이 확인된다. 다만 얼굴과 복식 부분의 화면 상태는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한천두 초상」은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춘, 또한 뛰어난 표현 기법이 적용된 초상화로 평가될 수 있다. 광해군 대에 제작된 공신상이 다수 전하는 것과 달리 공신교서는 드물게 전한다. 또한 한천두에게 내려준 경제적 특전이나 관직의 세습 등 공신의 우대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2017년 8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