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적 ()

목차
조선시대사
사건
조선 후기 경상도 일원에 출몰한 도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일원에 출몰한 도적.
개설

1617년(광해군 9) 경상도 지역에 나타난 도적의 이름이다. 우두머리는 이경기(李景基)인데, 자료에 따라서는 ‘이경기(李慶基)’로 나오기도 한다. 베[布]로 말의 옷[馬衣]을 만들어, 밤에 다닐 때 그것을 입혔으므로 사람들이 ‘백마적(白馬賊)’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과

1617년(광해군 9) 10월, 경상좌도 지역에 백마적이 횡행하였다. 영천군(榮川郡)에서 그 우두머리 이경기를 체포하였으나, 그 무리들이 옥문을 부수고 이경기를 탈취하였다. 당시 영천 군수였던 조찬한(趙纘韓)은 이를 계기로 파직되고, 의금부로 잡혀와 국문을 받게 되었다. 또 경상 감사 윤훤(尹暄)은 조찬한을 비호하였다는 혐의로 추고를 받았고, 군수는 유비(柳斐)로 대신하게 하였다.

결과

서울로 올라온 조찬한은 용서를 받고 같은 해 11월, 경상 공홍 토포관(慶尙公洪討捕官)이 되어 다시 도적의 토포 업무를 맡았다. 이후 조찬한은 삼도 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었다. 관할 구역을 왕래하며 순찰하던 조찬한은 직산(稷山)에서 이경기를 체포하였다. 이 공으로 조찬한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남계집(南溪集)』
『대동야승(大東野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