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광해군 9) 경상도 지역에 나타난 도적의 이름이다. 우두머리는 이경기(李景基)인데, 자료에 따라서는 ‘이경기(李慶基)’로 나오기도 한다. 베[布]로 말의 옷[馬衣]을 만들어, 밤에 다닐 때 그것을 입혔으므로 사람들이 ‘백마적(白馬賊)’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617년(광해군 9) 10월, 경상좌도 지역에 백마적이 횡행하였다. 영천군(榮川郡)에서 그 우두머리 이경기를 체포하였으나, 그 무리들이 옥문을 부수고 이경기를 탈취하였다. 당시 영천 군수였던 조찬한(趙纘韓)은 이를 계기로 파직되고, 의금부로 잡혀와 국문을 받게 되었다. 또 경상 감사 윤훤(尹暄)은 조찬한을 비호하였다는 혐의로 추고를 받았고, 군수는 유비(柳斐)로 대신하게 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조찬한은 용서를 받고 같은 해 11월, 경상 공홍 토포관(慶尙公洪討捕官)이 되어 다시 도적의 토포 업무를 맡았다. 이후 조찬한은 삼도 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었다. 관할 구역을 왕래하며 순찰하던 조찬한은 직산(稷山)에서 이경기를 체포하였다. 이 공으로 조찬한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