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는 세로 154.8㎝, 가로 148㎝이며, 비단에 채색하였다. 불화의 외곽은 나무틀로 장황되었는데, 원래의 장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방형의 구성을 보이는 「석천암 지장시왕도」에는 화면의 중앙에 지장보살이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 하고 있다. 지장보살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를 이루는 지장삼존(地藏三尊)의 구성이며, 이를 중심으로 시왕(十王)과 판관(判官), 녹사(錄事), 사자(使者), 옥졸(獄卒), 동자(童子), 공양천녀(供養天女)를 좌우 대칭으로 포치하였다.
지장보살은 목리문(木理紋)이 그려진 불단 위에 연화를 대좌로 앉아 있으며 왼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흑건(黑巾)을 썼으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후광으로 두고 있다. 목리문이 그려진 대좌의 좌우에는 승려 모습에 합장을 하고 석장(錫杖)을 든 도명존자와 관(冠)을 쓰고 합장한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을 협시하고 있다. 불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지장보살은 화려한 청연화 대좌를 둔 목리문 불단에 앉아 있다. 지장보살이 앉아 있는 불단의 규모는 커서 압도적으로 공간을 크게 차지한다.
두 존상(尊像)의 바깥쪽으로는 시왕이 배치되었는데 각각 5위(位)의 총 10위의 시왕이 있다. 시왕은 무독귀왕과 같은 형태의 관을 쓰고 홀(笏)을 들거나 수염을 만지는 모습이다. 시왕의 상단부에는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명부를 든 판관과 녹사가 있으며 더 위쪽으로 사자와 우두(牛頭) 옥졸, 마두(馬頭) 옥졸을 비롯, 선녀머리를 하고 과일을 든 천녀와 명부를 든 쌍계머리의 동자가 있다.
지장삼존과 보살, 동자와 천녀들은 대체적으로 방형의 얼굴에 꼭 다문 입, 중앙으로 몰린 이목구비의 특징을 보인다. 시왕의 경우 눈아래 등을 중심으로 안면부에는 음영을 가하였으며 긴 눈썹, 흰 수염이 있는 모습, 무독귀왕의 경우 커다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개성적인 모습 등 다양하다.
불화의 하단에는 불화가 조성된 사찰, 그림을 그린 스님, 발원자에 대해 적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양주 천보산 석천암(揚州天寶山石泉庵)’에서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천보산 석천암은 현재 남양주 불암산 석천암이다. 한편 불화를 그린 화승은 법총(法聰), 희원(凞圓), 혜호(慧皓) 등이며 1848년(도광 28) 무신 4월 초파일에 완성하였으며 14일에 점안 후 봉안했고, 후불탱화와 산신탱화도 함께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발원자의 대다수는 상궁이며, 윤치정(尹致定)이란 이름도 확인된다. 윤치정은 19세기에 활동했던 이조참의 등을 역임했던 문신이다.
「석천암 지장시왕도」는 19세기 전반의 근기(近畿) 지역의 귀한 지장시왕도로, 조성 연대와 봉안처, 화승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중요한 불화이다. 19세기 전반 근기 지역 지장시왕도의 도상의 유형을 확인할 수 있고, 수화승 법총의 불화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상궁이 대다수 시주자로 적혀 있어 조성 배경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상궁과 조선 말기 문신이었던 윤치정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