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사명 감로왕도 ( )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64년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로 13명의 화승이 제작한 불화.
이칭
이칭
대곡사 감로도(大谷寺 甘露圖)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64년(영조 40)
작가
치상(雉翔) 등 13명
소장처
원광대학교 박물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대곡사명 감로왕도(大谷寺銘 甘露王圖)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기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8년 06월 27일 지정)
소재지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대로 460 (신동, 원광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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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1764년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로 화원 치상 등 13명의 화승이 제작한 불화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원광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의 감로도로 화원 치상 등 13명의 화승이 제작했으며 등촉계 모연을 통해 감로도 시주가 이루어졌다. 18세기 감로도의 도상을 보이면서, 상단의 아미타삼존과 하단의 전쟁 장면이 전체적으로 펼쳐지는 점은 도상적으로 귀한 사례이다.

정의
1764년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에 봉안되었던 감로도로 13명의 화승이 제작한 불화.
제작 배경

불화의 화기에 의하면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大谷寺) 등촉계(燈燭契)에서 모연(募緣)된 시주를 통하여 감로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승려 선습(善習)과 통정대부 황대경(黃大京)이 모연을 주도하였고 많은 사람이 동참하였다.

불교가 억압되었던 조선시대에는 강제로 사찰의 재산이 몰수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사찰을 유지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사찰에서 각종 계(契)가 번성하면서 사찰의 신앙적, 경제적 기반을 확충시켜 나갔다. 등촉계는 명칭 그대로 불전(佛殿)을 밝히는 등촉(燈燭)을 시주하기 위한 계로 불량계(佛糧契)와 조선 후기 사찰계를 대표한다.

내용

비단 바탕에 상⋅중⋅하의 삼단 구성을 보여준다. 그림의 하단부에 기록되어 있는 화기에 의하면 1764년(건륭 29) 갑신(甲申) □월일에 40여 명 이상이 시주를 하고 화원(畫員) 치상(雉翔), 쾌인(快仁), 수오(守悟), 도균(道均), 쾌일(快日), 담혜(曇慧), 홍안(弘眼), 광헌(廣軒), 성찬(性贊), 낙보(樂宝), 낙선(樂禪), 보학(宝學), 능찬(能贊) 등 총 13명의 화승이 조성하여 대곡사에 봉안한 것으로 적혀 있다.

특히 화원 치상, 쾌인, 수오, 도균, 담혜, 홍안, 광헌, 성찬, 낙보, 낙선, 보학, 능찬 등 12명의 화원은 감로도를 조성한 1764년(영조 40)에 경상북도 의성 「 대곡사 지장시왕도」를 조성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로 보아 「대곡사명(大谷寺銘) 감로왕도」는 경상북도 의성 「대곡사 지장시왕도」와 함께 1764년에 조성되어 대곡사에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및 특징

크기는 세로 218.3㎝, 가로 278.0㎝이다. 화면 상단에 칠 여래를 중심으로 향우측에 관음보살, 목건련존자, 인로왕보살, 향좌측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아래로 중단에는 화면 중앙에 시식단과 아귀 1위(位) 및 의식을 집행하는 작법승과 제단을 향해 합장하고 있는 원주(願主)들이 표현되어 있다. 시식단의 좌우에는 선인과 선후 및 승려 등이 서운(瑞雲)과 암산을 구획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단에는 육도중생계가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화면의 향우측에서 향좌측으로 전쟁 장면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인간세상의 각종 재난과 풍속 장면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화면의 상단에 칠 여래를 비롯해 인로왕보살과 관음보살, 아미타보살 등의 내영 장면을 배치하고, 하단과 중단에 의식 장면과 아귀와 고혼을 배치한 형식은 18세기에 감로도의 특징으로 「대곡사명 감로왕도」의 구성은 18세기에 조성된 감로도의 양식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하단에는 화면의 전체에 전쟁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생동감 있게 펼져져 있고, 구름과 암산으로 인간계의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광경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 있다. 밭을 갈고 모심기를 하는 일상적인 풍속 모습과 다양한 환난 장면이 표현되어 있으며, 화면의 가장 아래에는 지옥의 여러 가지 형벌 장면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하단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전쟁 장면이다. 감로도의 전쟁 장면은 1649년의 「 보석사 감로왕도」 이후 1701년 「 남장사 감로왕도」, 1724년 「 직지사 감로왕도」, 1730년 「 선운사 감로도」 등을 비롯해 18세기에 조성된 감로도 대부분에 등장하지만 화면의 전체에 펼쳐진 예는 매우 적다.

「대곡사명 감로왕도」의 하단 전쟁 장면에는 충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의장수(忠義將帥)'와 말을 타고 가다 떨어져 밟히는 '차전마답(車前馬踏)'을 비롯해 다양한 자세의 군졸들이 섬세한 필체로 묘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의의 및 평가

1764년에 화원 치상을 비롯해 총 13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으며,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적인 특징인 삼단 구도를 보인다. 상단 화면의 중심에 칠 여래가 등장하게 된 것은 1701년 「남장사 감로왕도」에서 정립되어 이후 상단에는 칠불(七佛)과 관음, 인로왕, 지장보살의 배치가 일반화 되었지만, 「대곡사명 감로왕도」의 상단에는 1589년에 제작된 일본 약선사(藥仙寺) 소장 감로도에서처럼 비명횡사한 고혼들을 천도하기 위해 내영하는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18세기 감로도의 연구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하단에 횡으로 길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전쟁 장면은 매우 특이하다. 따라서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18세기 감로도의 도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여러 폭의 비단을 이어 붙인 거대한 화면에 유려하고 탄력 있는 필체로 다양한 장면을 묘사했다는 점과 화면의 상중하 및 좌우에 각 주제와 인물들을 균형 있게 배치했다는 점, 그리고 40여 명 이상의 발원자와 13명의 화원이 동참하여 조성했다는 점에서 18세기 감로도의 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2017-2019 새보물 납시었네』(국립중앙박물관, 2020)
『발원, 간절한 바람을 담다』(국립중앙박물관, 2015)
『감로(甘露)』(통도사성보박물관, 2005)
강우방, 김승희, 『감로탱』(예경, 1995)

논문

정명희, 「18세기 경북 의성의 불교회화와 제작자: 밀기, 치삭, 혜식의 불사를 중심으로」(『불교미술사학』 24, 불교미술사학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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