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를 가운데 두고 유럽의 남부와 서부,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걸쳐 거대 제국을 형성한 로마제국에서 제작된 유리제품을 일컫는다.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리용기는 대부분 로만글라스이며, 이는 동북아시아 대외교섭의 상징물이다.
로만글라스는 기원전후 시기에 지중해 동부의 시리아인들이 창안한 획기적인 대롱불기 기법을 토대로 성장하였다. 대롱불기 기법이란 흡사 긴 대롱으로 풍선을 불어내는 것처럼, 대롱 끝에 붙인 용융된 유리 덩이를 부풀려 유리그릇을 만드는 기술이다. 반용융상태의 유리 방울을 늘이고 주물러 그릇의 기본 형태를 잡고, 손잡이와 굽 그리고 장식을 덧붙여 다종다양한 유리용기를 만들었다. 거푸집 기법보다 대롱불기 기법은 제작 속도나 생산량에서 월등하였다. 이 기술을 지닌 시리아인들이 기원후 1세기에 로마제국의 중심지로 이주하였고, 또한 로마제국이 세계 곳곳과 교류함에 따라 로만글라스는 세계 교역사에서 매우 비싸고 귀중한 무역품으로 자리를 차지하였다.
유리의 성분분류에 따르면 로만글라스는 소다석회유리 계열이다. 46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유리용기의 대부분은 로만글라스로 분석되며, 일부가 소다알루미나유리 계열로 분석된다. 중국에서는 북위(386534)에서 생산할 때까지 동서교류를 통해 들어온 외래 유리용기가 고위층의 신분과시용으로 이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신라와 가야의 무덤에서 발굴되었으며, 주로 신라의 왕경인 경주에 집중된 대형고분의 부장품이다.
신라 고분에서 발굴된 유리용기는 대부분 후기 로만글라스이지만 사산조 페르시아의 커트글라스와 중국에서 생산된 것까지 다양하다. 동북아시아의 북방유목권역에서도 같은 양상이 확인되고, 유행하던 시기도 유목민족의 왕조들이 중국 중원을 장악한 남북조시대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신라의 유리용기는 중국의 유목민족 왕조와 대외교류를 통해 2차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일부에서는 서역과의 직접 교류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