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금릉동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복합유적.
유적
건립 시기
구석기시대~조선시대
관련 국가
마한, 신라, 고려, 조선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내용 요약

충주금릉동유적(忠州金陵洞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복합유적이다. 후기 구석기시대 문화층과 함께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와 말꼴띠쇠 등이 출토되는 마한 계통의 원삼국시대 시기 구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울무덤의 존재가 특징적이며, 유물 가운데 단접하여 만든 재갈은 북방 지역과의 문화적 연관성을 시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충주세무서 건립으로 인해 조사되었으며, 현재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조선시대까지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는 복합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충주금릉동유적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의 남한강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초기 철기시대 · 원삼국시대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형태와 특징

구석기시대 유물층은 두 층이 확인되었는데, 아래 1유물층에서는 석영제 몸돌과 주1, 자갈돌 등이 출토되었다. 상부 2문화층에서는 주2와 긁개, 주3 등이 출토되었는데, 여기서 채집한 목탄에 대한 주4 결과 22,300±250BP의 연대값이 나와 대략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의 핵심은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주5(159기)과 주6(1기)이다. 구덩무덤은 장축이 등고선 방향을 따라 배치되어 있으나, 무덤 주위에 도랑은 없고, 무덤구덩이 깊이가 1m 내외로 대체로 깊은 편이다.

무덤 사이에 우연한 중복 관계가 없는 반면에, 의도적으로 두 무덤을 하나의 무덤구덩이에 매장하거나 또는 무덤구덩이 2개를 나란히 붙여 만든 주7이 13기 확인된 점이 특이하다.

부장품은 토기(247점)와 철기(226점), 청동기(19점), 구슬(748점)이 주이며, 숫돌(2점)과 칠기흔(1점)도 확인되었다. 토기는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와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가 기본 조합이며, 복구연호(複口緣壺)와 기마인물상 손잡이달린뚜껑항아리 같은 토기도 출토되었다.

철기는 고리자루큰칼과 주8가 없는 화살촉, 쇠투겁창, 재갈 등이 있으며, 청동기는 주9가 특징적이다. 특히 78-1호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은 재갈 머금 부분을 주10하여 만든 것으로, 흉노와 고구려, 부여 등 북방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제작 기법으로 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이 주목된다.

이러한 무덤 형태와 유물 양상은 청주 · 천안 · 공주 등 중서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소위 마한의 문화 양상과 일치하는 것이며, 그 조성 시기는 3세기 대를 중심으로 4세기 무렵까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서기전 3세기 무렵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2기)과 신라시대 주11(1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2기)과 함께 17세기 이후 친족 집단묘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무덤들도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충주금릉동유적은 충주세무서 건립으로 인해 조사되었으나, 조사 후 공사가 실시되어 현재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단행본

우종윤, 성정용, 손명수, 장홍선, 함재욱, 『忠州 金陵洞遺蹟』(忠北大學校博物館, 2007)

논문

成正鏞, 「中原地域 原三國時代 墳墓 築造集團의 性格」(『考古學』 12-3, 中部考古學會, 2013)
주석
주1

몸돌에서 떼어 낸 돌 조각.    우리말샘

주2

주먹을 쥐듯이 잡고 대패처럼 쓰던 석기. 대부분 가로날을 냈으며, 크기가 커서 나무를 다듬거나 가죽을 벗기는 데 썼다.    우리말샘

주3

날에 홈을 내어 나뭇가지나 뼈를 자르는 데 쓰던 석기.    우리말샘

주4

탄소의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하여 절대 연령이나 연대를 재는 방법. 생물이 죽으면 이산화 탄소의 결합이 끊겨 사체(死體) 속의 탄소 14가 일정한 반감기로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시료 속의 탄소 14의 양을 근거로 그 생물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우리말샘

주5

구덩이를 파서 널이나 덧널 따위를 쓰지 않고 직접 시체를 묻어 만드는 무덤.    우리말샘

주6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여 지금까지도 일부 섬 지방에서 쓰이는데, 하나의 토기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개 또는 세 개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7

두 사람 이상의 주검을 한데 묻은 무덤. 대개 부부를 묻은 경우가 많다.    우리말샘

주8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    우리말샘

주9

말 모양으로 된, 허리띠를 죄는 쇠.    우리말샘

주10

금속의 이어 붙일 부분을 녹는점 가까이까지 달구어 누르거나 망치로 때려서 이어 붙임. 또는 그런 방법.    우리말샘

주11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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