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금릉동유적은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의 남한강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야트막한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석기시대 유물 포함층을 비롯해 초기 철기시대 · 원삼국시대 · 삼국시대 · 고려시대 · 조선시대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구석기시대 유물층은 두 층이 확인되었는데, 아래 1유물층에서는 석영제 몸돌과 격지석기, 자갈돌 등이 출토되었다. 상부 2문화층에서는 주먹대패와 긁개, 홈날도구 등이 출토되었는데, 여기서 채집한 목탄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결과 22,300±250BP의 연대값이 나와 대략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의 핵심은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구덩무덤(159기)과 독무덤(1기)이다. 구덩무덤은 장축이 등고선 방향을 따라 배치되어 있으나, 무덤 주위에 도랑은 없고, 무덤구덩이 깊이가 1m 내외로 대체로 깊은 편이다.
무덤 사이에 우연한 중복 관계가 없는 반면에, 의도적으로 두 무덤을 하나의 무덤구덩이에 매장하거나 또는 무덤구덩이 2개를 나란히 붙여 만든 어울무덤이 13기 확인된 점이 특이하다.
부장품은 토기(247점)와 철기(226점), 청동기(19점), 구슬(748점)이 주이며, 숫돌(2점)과 칠기흔(1점)도 확인되었다. 토기는 둥근바닥짧은목항아리와 납작바닥의 바리모양토기가 기본 조합이며, 복구연호(複口緣壺)와 기마인물상 손잡이달린뚜껑항아리 같은 토기도 출토되었다.
철기는 고리자루큰칼과 슴베가 없는 화살촉, 쇠투겁창, 재갈 등이 있으며, 청동기는 말꼴띠쇠가 특징적이다. 특히 78-1호 무덤에서 출토된 재갈은 재갈 머금 부분을 단접(鍛接)하여 만든 것으로, 흉노와 고구려, 부여 등 북방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 제작 기법으로 되어 있어 상호 관련성이 주목된다.
이러한 무덤 형태와 유물 양상은 청주 · 천안 · 공주 등 중서부 지역에서 확인되는 소위 마한의 문화 양상과 일치하는 것이며, 그 조성 시기는 3세기 대를 중심으로 4세기 무렵까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 서기전 3세기 무렵의 초기 철기시대 무덤(2기)과 신라시대 돌덧널무덤(1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2기)과 함께 17세기 이후 친족 집단묘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무덤들도 확인되었다.
충주금릉동유적은 충주세무서 건립으로 인해 조사되었으나, 조사 후 공사가 실시되어 현재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