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기 고구려의 조세 제도에서 인(人)과 구별되며 호(戶)가 아닌 인세(人稅)의 대상이다. 인과의 조세비율에서의 현격한 차이와 삼년에 한 번 내는 시기상의 차이마저 고려해 세금을 내는 특수한 성격을 지닌 집단이다.
‘유인(遊人)’은 고구려의 조세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조세의 주 대상인 ‘인(人)’과는 구별되는 존재이며, 인세(人稅)의 대상으로서만 언급되고 있다. 또한 그 세율에 있어 ‘인’이 포 5필과 곡 5석을 내는 것에 비해 3년에 1번 낼 뿐 아니라 10사람이 세포 1필을 냄으로써 세율 적용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유인’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백남운이 ‘빈민(貧民)’으로 보는 견해를 제기한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이 견해를 따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면서 '고구려 내의 이방인'으로 말갈이나 거란 등과 같은 부용집단으로 보거나, 전쟁으로 고구려에 포로로 잡혀온 백제, 신라, 중국인들로 보기도 한다. 한편 ‘낙인(樂人)’으로 보기도 하고, '유녀(遊女)'와 관련지어 '매음녀'로 보거나, 장기적인 전쟁으로 인해 발생된 전쟁 부랑자들로 보는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다.
‘유인’은 고구려 후기 사회상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기사를 통한 유추로 인해 그 실체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