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산성은 고구려 산성으로 봉세산성이라고도 불린다. 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고로봉식 산성이다. 고구려시기부터 육상 교통로 방어와 해안방어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고구려가 394년(광개토왕 3) 8월에 백제의 침범을 막기 위해 나라 남쪽에 7개의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연안산성은 장수산성을 중심으로 한 방어체계에서 남쪽 방면에 쌓은 7개의 성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연안산성이 위치한 황해남도 연안지역은 바다를 통해 우리나라 서해안 어디에나 갈 수 있다. 육로로는 서쪽으로 해주, 신원을 거쳐 평양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배천, 평산을 거쳐 개성과 서울로 통할 수 있다. 또한 연안일대는 주변에 넓고 기름진 평야가 있는 곡창지대이며 강과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 자원도 풍부한 곳이다.
산성이 있는 봉세산(鳳勢山)은 연안읍 북쪽 경계에 위치하며 새가 날아가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 비봉산(飛鳳山)이라고 불렸다. 이 산의 주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능선을 경계로 외성과 내성으로 분리되어 있다. 연안산성 성벽은 외면 쌓기와 양면 쌓기 방법을 결합하여 축조하였다. 성벽 축조에 쓰인 돌은 현지에 흔한 규암질의 다듬은 돌과 진흙, 막돌이다. 성돌의 크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형태는 방추형이며 다듬은 수법은 대체로 비슷하다.
성문은 동남문, 서남문, 북문, 동문 등 모두 4개인데 교통조건과 방어조건이 유사한 곳에 설치되었다. 현재는 모두 허물어져 본래의 구조 형식과 규모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동남문터가 이 성의 정문이다. 치는 남벽과 서벽, 동벽에 각각 2개, 북벽에 1개로 모두 7개가 있는데 성벽이 꺾이는 모퉁이와 직선으로 된 곳에 설치되었다. 성가퀴는 성벽 윗부분이 많이 흘러내려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으나 성벽 윗부분에서 많은 기와조각들이 드러난 것으로 보아 평가퀴에 기와를 씌웠던 것으로 보인다.
집터는 성 안의 두 골짜기와 문터 부근에서 모두 11개가 발견되었다. 집터가 많이 집중되어 있는 곳은 동쪽 골짜기로 대부분 남향으로 길게 놓였다. 장대터는 모두 4개소다. 장대터로 이용된 봉우리들은 산성의 북쪽 봉우리, 동북쪽 봉우리, 동남 봉우리, 남쪽 봉우리다. 그 중 북쪽 봉우리의 장대터가 이 성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이 장대터 주변에서는 여러 종류의 기와조각들이 드러났다.
성 안에는 우물과 못이 있다. 우물은 성 안의 동쪽 골짜기 중턱에 2개, 서쪽 골짜기 안에 1개 있다. 못은 성 안 동남문터 부근에 있는데 동쪽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저장하게 되어 있다. 유물로는 기와와 질그릇이 있는데 기와는 붉은색, 회색, 흑회색, 검은색으로 구분된다. 붉은색 기와는 전형적인 고구려 기와로 한쪽에는 베천무늬가 있고 다른 한쪽 면에는 노끈무늬, 그물무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