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년 9월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영류왕(榮留王)을 살해하고 대양왕의 아들인 장(藏)을 세워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보장왕은 643년 아버지를 왕으로 봉하였다.
대양왕은 평원왕(平原王)의 아들로서 영양왕(嬰陽王)과 영류왕과는 형제간이다. 『구당서』에는 영류왕의 형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에는 아우로 전해지고 있다. 고구려 영양왕의 이름은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고 영류왕은 건무(建武) 또는 성(成)이다. 대양왕의 이름인 대양(大陽)과 영양왕의 대원과의 유사성으로, 영양왕과 대양왕은 동모(同母)형제로, 영류왕은 이모(異母)형제로 파악하여, 연개소문 정변 당시 영양왕의 동모형제였던 대양왕의 혈통인 보장왕을 왕으로 세운다는 명분을 가졌다고 보기도 한다.
『일본서기』 황극천황 원년조에 실린 고구려 사신의 전언에 의하면 대양왕은 연개소문 정변 3개월 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대양왕이 죽은 시기와 정변과의 시기적 인접성으로 인해 대양왕과 연개소문 세력 사이의 연계 가능성을 제기한 견해가 있다. 귀족연립체제를 지향하는 귀족들에 의하여 견제의 대상이 되어 궁지에 몰려 있던 세력과, 일찍이 왕위계승에서 밀려나 불만 집단으로 남아 있던 일부 왕실 세력의 결합이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양왕의 죽음을 연개소문 정변의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가정 하에서 보장왕 집권 초기에는 보장왕과 연씨 가문과의 사이에 큰 마찰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