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암사소장불서(僧巖寺所藏佛書)는 전주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에 간행한 목판본 불서이다. 『묘법연화경』 2책과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 1책 등 3책이다. 『묘법연화경』 권4~7은 1443년(세종 25) 화암사에서 태종의 명복을 빌며 효령대군과 영흥대군 등 왕실 종친의 시주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1456년 이후의 후쇄본이다. 『묘법연화경』 권2~3은 담양 용천사에서 간행한 1575년본으로 추정된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 권상은 1558년 황해도 귀진사에서 판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본이다.
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4)이 한역(漢譯)하였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4~7은 4권 1책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경계선이 없으며, 반엽(半葉) 체제는 10행 20자이다. 어미(魚尾)가 없다. 후쇄(後刷)한 주1에는 “정통계해화암사개판(正統癸亥花岩寺開板)”이라 적혀 있다.
『묘법연화경』 권2~3은 3권 1책이다. 사주단변이고, 경계선이 없으며, 반엽 체제는 10행 20자이다.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가 있다. 『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金剛般若波羅蜜經 五家解)』 권상은 1권 1책이다.
『묘법연화경』 권4~7은 효령대군(孝寧大君), 영흥대군(永興大君), 함령군(諴寧君), 온령군(溫寧君), 해평군(海平君), 영평군(鈴平君), 유천군(柔川君) 등 대군(大君)과 군(君)의 시주에 따라, 세종대왕의 수만세(壽萬歲)를 기원하고 1422년(세종 4)에 승하한 태종의 명복을 빌며, 성달생(成達生)이 쓴 정서본을 바탕으로 1443년(세종 25) 전라도 고산(高山) 화암사(花巖寺)에서 개판(開版)한 것을 후쇄한 판본이다.
『묘법연화경』 권2~3은 간기에 판각 연대는 남아 있지 않지만 판본의 서체나 형식 등으로 보아 담양 용천사(龍泉寺)에서 1575년(선조 8)에 간행한 판본으로 추정된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 권상은 판본의 형식과 서체 등으로 볼 때 1558년(명종 13)에 황해도 귀진사(歸進寺)에서 간행한 판본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판본이다.
『묘법연화경』은 우리나라 불교계 근본 경전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7권본이 널리 유통되었으며, 28품으로 되어 있다.
『묘법연화경』 권4~7은 표지가 결실되었다. 제4, 5, 7권의 끝에 시주질이 있으며, 간기는 7권 끝에 있다. 1443년(세종 25)에 화암사에서 판각된 목판에서 1456년(세조 2) 이후에 후쇄한 판본으로 보인다. 주2로 시주자가 많이 쓰여져 있다.
『묘법연화경』 권2~3은 3권 뒤에 붙어 있는 간기에 대시주 설잠(雪岑) 비구, 영원(玲元) 비구를 비롯한 많은 시주자들이 동참, 주3한 내용이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는 「오가해서설(五家解序說)」과 『금강경(金剛經)』 권상(卷上)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강경』이라고도 하는데 반야(般若) 계통의 경전들 가운데 『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과 함께 가장 널리 읽혀지는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역대에 걸쳐 종파에 관계없이 가장 많이 독송된 경전이며, 특히 주4에서 중요시되었다. 승암사 도서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는 간기에 기록된 시주자가 승려와 신도 150여 명에 이른다.
『묘법연화경』 권4~7은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불서 간행 사찰이었던 화암사에서 1443년 왕실 종친의 시주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서, 1456년 이후의 후쇄본이지만 가치가 크다. 『묘법연화경』 권2~3은 16세기의 대표적 판본이며, 『금강반야바라밀경 오가해』는 현존하는 판본이 매우 희귀하여 자료적 가치가 크다.
2006년 6월 16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승암사의 기증을 받아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