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행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1년 7월 25일
사망 연도
2000년 6월 28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주요 경력
한국광복군
대표 상훈
건국포장(1977)|건국훈장 애국장(1990)
내용 요약

오성행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1939년 중국군사위원회 제18집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에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한 후 다시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배속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초모 활동에 주력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오성행(吳成行)은 1921년 7월 25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주요 활동

1939년 산시성〔山西省〕 심현(心縣)에서 중국군사위원회 제18 집단 군사령부에 소속되어 항일전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1940년 9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창설위원회 위원장 김구(金九) 명의로 발표된 한국광복군 선언문에는 “중화민국 항전 4개년에 도달한 이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가지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할 시기에 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중화민국 최고 영수 장제스〔蔣介石〕 원수의 한국 민족에 대한 원대한 정책을 채택함을 기뻐하며 감사의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우리 국가의 해방운동과 특히, 우리들의 압박자 왜적에 대한 무장투쟁의 준비는 그의 도덕적 지원으로 크게 고무되는 바이다. 우리들은 한중 연합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극동 및 아시아 인민 중에서 자유 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선언문 발표 이틀 뒤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서 중국 제34 집단군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 내에 한국청년훈련반(약칭 한청반)을 특설할 때 이곳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2기로 수료하였다. 한청반은 전지공작대 시절 중국 주1 후중난〔胡宗南〕 사령관의 협조를 얻어 설치한 곳으로, 제2지대가 성립된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서 교육훈련이 실시되었다.

1942년 4월에는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 제3분대장에 임명되어 주2 공작 활동과 적의 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광복군 제2지대본부 부관으로 배속되어 복무하였으며, 당시 계급은 중위였다. 1945년 8 · 5광복 때까지 광복군 제2지대에서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 1993)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편, 『독립운동사』 제4권, 제6권(고려서림, 198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 5(탐구당, 1968)
김승학, 『한국독립사』 하권(독립문화사, 1966)
주석
주1

중국 국민당이 1925년 광저우(廣州)에 수립한 중화민국 정부. 쑨원(孫文)이 죽은 후 후한민(胡漢民)이 광둥 정부(廣東政府)를 개혁하여 고친 이름으로, 후에 장제스(蔣介石)의 지도 아래 민주 공화국으로 발족하였으나, 중국 공산당에 패하여 1949년 대만으로 물러났다.    우리말샘

주2

사람을 불러 모음.    우리말샘

집필자
김주용(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