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의 쇼쇼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시대 먹 2점이다. 형태는 모두 배 모양이며 각각의 먹에는 ‘신라양가상묵(新羅楊家上墨)’, ‘신라무가상묵(新羅武家上墨)’이 압인되어 있어, 신라의 양가(楊家)와 무가(武家)에서 좋은 먹을 생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먹으로는 1998년 청주 명암동의 고려시대 목관묘에서 발굴된 ‘단산오옥(丹山烏玉)’이 새겨진 먹인데,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먹이다.
인쇄용으로 사용되는 먹에는 송연묵(松煙墨)과 유연묵(油煙墨)이 있는데, 송연묵은 목판 인쇄와 서예에, 유연묵은 금속활자 인쇄와 서화에 주로 사용되었다. 송연묵은 송진을 뺀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향을 첨가하여 만들었으며, 유연묵은 오동나무, 피마자, 유채, 아마, 콩 등 식물성기름과 돼지기름 등 동물성 그을음으로 만들었다.
재료에 따라 먹의 품질도 달라진다. 오동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은 먹빛이 진하고 광택이 우수하며 두꺼운 느낌의 고급 흑색으로 가장 균형감이 있다. 유채 그을음으로 만든 먹은 보랏빛이 감도는 깊은 흑색이 나고, 광택은 동유에 비해 약하며 서예 용도로 많이 사용하였다. 참기름의 그을음은 입자가 작고 연한 보랏빛을 내는 먹을 만들 수 있었다.
유연묵은 ‘기름먹’ 또는 ‘참먹’이라 일컬어 왔다. 주로 오동나무 기름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 소개되어 있다. 유연먹은 먹색이 희미하나 걸지 않아 필사용에 아주 적합하였다. 한번 붓에 먹물을 칠하면 길게 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속활자 인쇄에도 매우 적합하였다. 기름은 응고력과 접착력이 있어 쇠붙이에 착묵(着墨)이 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판 인쇄를 할 때는 착묵이 묽고 희미한 것이 흠이다.
먹의 제조 방법이 기록된 고문헌으로는 조선시대 어숙권의 『패관잡기(稗官雜記)』, 서명응의 『고사신서(攷事新書)』,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 중국 명나라 송응성(宋應星)의 『천공개물(天工開物)』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유연묵을 만드는 방법은 『산림경제』와 『천공개물』에 소개되어 있는데, 『산림경제』 권4 「잡방(雜方)」에 소개된 ‘이정규의 먹 만드는 법[李廷珪造墨法]’은 다음과 같다.
청마유(淸麻油) 10근 중에서 먼저 3근을 취하여 소목(蘇木) 1냥 반, 황련(黃連) 2냥 반, 행인(杏仁) 2냥을 빻아 부수어서 함께 달인다. 그리하여 기름이 변색되기를 기다려 따뜻할 때 꺼내어 짜고 찌꺼기는 버린다. 짜낸 물을 기울여 나머지 기름 속에 붓고 고루 섞이도록 젓는다. 땅을 파고 등잔을 놓아두되 깊이를 등잔의 높이와 평평하게 만들고 기름을 가득 붓고 심지를 넣어 불을 붙인다. 그리고 동이의 입 넓이가 8~9촌이 되고 밑의 깊이가 3촌 가량 되는 와분(瓦盆)으로 위를 덮되 사방 1촌이 되는 기와 조각으로 3면에 기둥을 세우기를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게 만든다.
이렇게 해 놓고 매양 밥 한 솥 지을 만한 시간의 간격으로 한 차례씩 그을음을 쓸어내야 하므로, 등잔 열 개만을 만들어 놓아야 적당하다. 만약 등잔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그을음을 쓸어서 모두 벗겨 내지 못한다. 그리고 쓸어낸 그을음 4냥 반마다 황련(黃連) 반 냥과 소목(蘇木) 4냥을 각각 빻아 부수어서 물 두 잔에 함께 5~7차로 끓도록 달인다. 그리하여 빛깔이 변하기를 기다렸다가 숙초(熟綃)로 짜 찌꺼기를 버리고 따로 침향(沈香) 1전 반과 함께 달여 물 4냥쯤 되었을 때 다시 짜낸다.
그다음 용뇌(龍腦) 반 전, 사향(麝香) 1전, 경분(輕粉) 1전 반을 약즙(藥汁) 반 홉과 연화(硏化)한다. 먼저 약즙에 건교(乾膠) 1냥 1전 5푼을 넣고 함께 볶되 부지런히 저어 녹인 다음, 용뇌와 사향즙을 넣고 고루 섞이도록 저어, 뜨거울 적에 그을음 안에 부어 넣고 바람이 치지 않는 곳에서 속히 갠다. 그다음 안상(案上)에다 놓고 둥글게 주물르되 빛이 비치기를 기다려서 네모진 틀에 넣어 먹 자루를 만들어 전혀 바람을 쏘이지 말고 움 속에 5~7일을 두었다가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꺼내서 깨끗이 닦아 저장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