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본은 필사본의 종류 중 글자의 모양이 단정하고 글씨의 획이 바르게 쓰인 책이다. 대표적인 정서본으로는 목판에 새기기 위해 필사한 판각용 정고본(板刻用淨稿本)과 전문적인 필사가가 기존의 서책을 단정한 글씨로 베껴 쓴 필사본이 있다. 판각용 정고본은 목판이 제작됨에 따라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으며, 전문 필사가가 단정하고 바른 글씨로 베껴 쓴 필사본은 외양적으로는 아무런 흠결이 없는 선본(善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오자(誤字)나 탈자(脫字)와 같은 다양한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필사본은 종이나 비단 위에 붓으로 쓴 책을 말한다. 필사본의 종류에는 크게 저자가 글 내용을 직접 저술하거나 편집하여 쓴 고본(稿本), 기존의 서책을 베껴 쓴 전사본(傳寫本), 그리고 종교적 차원에서 경전을 베껴 쓴 사경(寫經)이 있다. 정서본(淨書本)은 이러한 필사본 가운데 글자가 단정하고 글씨의 획이 바르게 쓰인 책으로 정고본(淨稿本) 또는 정사본(淨寫本), 정초본(淨抄本)으로도 불린다.
정서본 가운데 가장 깨끗한 것으로는 목판에 새기기 위해 제작한 판각용 정고본(板刻用淨稿本)이 있다. 이를 개판용 정고본(開板用淨稿本) · 상재용 정고본(上梓用淨稿本) · 등재용 정고본(登梓用淨稿本)으로도 부른다. 하지만 판각용 정고본은 필사한 본래의 목적인 판각 작업을 마치게 되면 목판 위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보다는 저자가 아닌 전문적인 필사가나 후대 사람들이 기존의 서책을 단정하고 획이 바른 글씨로 베껴 쓴 정서본이 일반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서본을 대할 때는 전문적인 필사가나 후대 사람들이 단정한 글씨로 베껴 쓴 필사본의 경우 외양적으로는 아무런 흠결이 없는 깨끗한 선본(善本)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다양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만약 단정한 글씨의 정서본을 대상으로 책의 저자나 후대의 학자가 교정을 가했다면 본문의 행간(行間)이나 광곽(匡廓)의 상단에 오류를 바로잡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교정을 거친 본을 교정 고본(校正稿本) 또는 교정 사본(校正寫本)이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깨끗하게만 필사된 일반적인 정서본의 경우 그 내용의 정확도를 신뢰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숙종 때 소론(小論)의 영수 최석항(崔錫恒)의 문집인 『손와유고(損窩遺稿)』의 사본 중 하나가 그 예이다. 『손와유고』는 1933에 등사하여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된 필사본 1종과 이듬해인 1934년에 등사하여 규장각에 보관된 필사본 1종이 전해지고 있는 책이다. 이 가운데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손와유고』는 곳곳에 교정의 흔적이 있는 있는 교정 사본으로 각 책의 말미에 등사자와 교정자 및 전체 사업의 책임자까지 그 이름이 실명으로 기재되어 있다. 반면, 규장각에 보관된 『손와유고』는 단정한 글씨에다 교정사항이 없는 깨끗한 정서본이지만 실제 그 내용을 검토해 보면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정서본은 학자에 따라서 특별히 정성을 들여 섬세한 필치로 쓴 정사본(精寫本)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