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시대 동아시아에서는 하루의 길이를 분할하는 시제(時制)로 하루를 균등하게 나누는 정시법(定時法)과 변화하는 밤낮의 길이를 반영한 부정시법(不定時法)을 사용하였다. 정시법은 하루를 시(時)로 나누는 방법과 각(刻)으로 나누는 방법을 같이 사용하는데 대체로 12시(十二時) 100각법(百刻法)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12와 100이 나누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1/6각에 해당하는 소각(小刻)을 고안하여 사용해야만 하였다.
중국에서는 순치(順治) 2년인 1645년에 「시헌력(時憲曆)」으로의 개력(改曆)과 함께 시제가 12시 96각법(九十六刻法)으로 바뀌었다. 「시헌력」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서양 천문 역산학(曆算學) 지식을 바탕으로 편찬하여 숭정(崇禎) 7년인 1634년에 완성한 『 숭정역서(崇禎曆書)』를 청나라에서 이름을 바꾸어 반포한 것이다. 「시헌력」에서는 중국 전통에 따른 시제인 12시 100각법 대신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창안한 12시 96각법의 시제를 사용하였다.
12시 96각법의 시제에서 시법은 중국식을 유지하여 각각 자(子) · 축(丑) · 인(寅) · 묘(卯) · 진(辰) · 사(巳) · 오(午) · 미(未) · 신(申) · 유(酉) · 술(戌) · 해(亥)의 십이지(十二支)의 이름을 붙여서 불렀고 매 시는 초(初)와 정(正)으로 이분되었다. 각법은 서양식의 '1시간=60분'에 근거하여 변화되었다. 매 시는 8각으로, 1각은 15분으로 설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매 시의 초와 정은 4각, 곧 60분이 된다.
12시 96각법은 「시헌력」과 함께 조선에 전해졌다. 조선은 1653년(효종 4)에 「시헌력」으로 개력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시헌력」 체제를 완벽히 습득하고 12시 96각법 시제로 전환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1718년(숙종 44)에 관상감(觀象監)은 역법을 「시헌력」으로 개력한 지 오래 되었지만 시제는 계속해서 대통력법(大統曆法)을 썼는데 이제야 「시헌력」에 따른 시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아뢰었다. 1745년(영조 21)에는 관상감 관원 안국빈(安國賓)이 「시헌력」 시제를 연구하여 『누주통의(漏籌通義)』를 편찬했다. 조선이 「시헌력」 시제를 완벽하게 습득하게 된 시점은 1789년(정조 13)이었다. 김영(金泳)은 「시헌력」에 따른 시제를 운용하는 매뉴얼인 『신법중성기(新法中星記)』와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를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