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덕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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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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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인덕력은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이다. 665년에서 728년까지 사용되었다. 수나라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진삭법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674년에 신라가 당나라에서 도입해온 역법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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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
내용

당(唐)나라 무덕(武德) 2년에 해당하는 619년부터 사용되었던 「무인력(戊寅曆)」의 오차가 점차 심해지자, 이순풍(李淳風)은 『갑자원력(甲子元曆)』을 편찬하였다. 당나라는 이 역법(曆法)에 「인덕력(麟德曆)」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덕(麟德) 2년에 해당하는 665년부터 발행하였다. 세월이 지나 인덕력으로 계산한 일식(日蝕) 예보에 오류가 생기자 개력(改曆)이 추진되어 개원(開元) 17년에 해당하는 729년부터 일행(一行)이 편찬한 『대연력(大衍曆)』을 사용하였다.

「인덕력」은 수(隋)나라 천문학자(天文學者) 유작(劉焯)이 편찬한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황극력』에는 새롭게 도입되었던 천문 이론이 모두 반영되었고 이순풍의 생각이 추가되었다. 진삭법(進朔法)을 도입하여 큰달이 4번 연달아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기존 역법에서 사용되었던 장(章) · 부(蔀) · 원(元) · 기(紀) 등의 복잡한 단위를 폐지하고 역법 계산 중 사용되는 여러 상수를 총법(總法) 1,340으로 통일하여 계산을 간소화하였다.

674년(문무왕 14년) 신라는 당나라에 숙위로 갔던 대나마(大奈麻) 덕복(德福)이 역술(曆術)을 배워서 돌아오자 새 역법으로 고쳐서 사용하였다. 덕복이 배워 온 새 역법이 「인덕력」으로 추정된다. 이후 신라는 「인덕력」으로 역서를 편찬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의 역법 운용은 당나라의 역법 운용과 상당히 밀접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690년(신문왕 10)에 「원가력(元嘉曆)」과 「의봉력(儀鳳曆)」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763년(경덕왕 22)에는 「의봉력」을 폐지하고 「대연력(大衍曆)」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의봉력」은 중국 사료(史料)에는 등장하지 않는 역법인데, 대체로 「인덕력」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의봉 연간에 일본으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의봉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신당서(新唐書)』

단행본

나일성,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이은성, 『曆法의 原理分析』 (정음사, 1985)
전용훈, 『한국천문학사』 (들녘, 2017)
卢嘉锡, 『中国科学技术史-天文学卷』(北京:科学出版社, 2016)
张培瑜, 『中国古代历法』(北京 : 中国科学技术出版社, 2008)
藪內淸, 『(改訂增補) 中國の天文曆法』(東京:平凡社, 1990)

논문

고현정, 「일본 儀鳳曆의 傳來 문제와 新羅」 (『한국고대사연구』 75, 한국고대사학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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