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 무덕(武德) 2년에 해당하는 619년부터 사용되었던 「무인력(戊寅曆)」의 오차가 점차 심해지자, 이순풍(李淳風)은 『갑자원력(甲子元曆)』을 편찬하였다. 당나라는 이 역법(曆法)에 「인덕력(麟德曆)」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덕(麟德) 2년에 해당하는 665년부터 발행하였다. 세월이 지나 인덕력으로 계산한 일식(日蝕) 예보에 오류가 생기자 개력(改曆)이 추진되어 개원(開元) 17년에 해당하는 729년부터 일행(一行)이 편찬한 『대연력(大衍曆)』을 사용하였다.
「인덕력」은 수(隋)나라 천문학자(天文學者) 유작(劉焯)이 편찬한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황극력』에는 새롭게 도입되었던 천문 이론이 모두 반영되었고 이순풍의 생각이 추가되었다. 진삭법(進朔法)을 도입하여 큰달이 4번 연달아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기존 역법에서 사용되었던 장(章) · 부(蔀) · 원(元) · 기(紀) 등의 복잡한 단위를 폐지하고 역법 계산 중 사용되는 여러 상수를 총법(總法) 1,340으로 통일하여 계산을 간소화하였다.
674년(문무왕 14년) 신라는 당나라에 숙위로 갔던 대나마(大奈麻) 덕복(德福)이 역술(曆術)을 배워서 돌아오자 새 역법으로 고쳐서 사용하였다. 덕복이 배워 온 새 역법이 「인덕력」으로 추정된다. 이후 신라는 「인덕력」으로 역서를 편찬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의 역법 운용은 당나라의 역법 운용과 상당히 밀접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690년(신문왕 10)에 「원가력(元嘉曆)」과 「의봉력(儀鳳曆)」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763년(경덕왕 22)에는 「의봉력」을 폐지하고 「대연력(大衍曆)」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의봉력」은 중국 사료(史料)에는 등장하지 않는 역법인데, 대체로 「인덕력」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의봉 연간에 일본으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의봉력」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