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교회(間島敎會)
당시 간도 지역은 형식상으로는 파리 외방전교회가 사목하는 만주교구(교구장 Guillon 주교)에 속하였지만, 사실상 조선대목구가 사목하는 공소(公所)가 설립되어 있었다. 이후 화룡현(和龍縣), 연길현(延吉縣), 왕청현(汪淸縣), 혼춘현(琿春縣) 등지에 교우촌과 공소 및 교회 부설 사립학교들이 설립되어, 1909년 간도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간도 지역에는 2개 본당[영암촌(三元峰), 용정(龍井)]에 대략 2,700여 명의 신자들이 있었다. 1920년 8월, 간도 지역의 사목은 신설된 원산대목구로 이관되었고, 기존의 용정, 영암촌 본당 외에도 팔도구(八道溝) 본당 등 3개 본당에 각각 베네딕도회의 독일인 사제들이 파견되어 약 7,500명의 신자들을 사목하였다. 1921년 3월 19일 교황청의 결정에 따라 간도 지역 조선인 천주교회의 사목관할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