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구군창의진(關東九郡倡義陣)
그러나 선평에 도착한 이튿날부터 눈보라가 몰아 쳐 활과 화승총을 쓸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미리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관군과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후퇴하고 말았다. 그 뒤 삼척·횡성 등지에서 병력을 보충, 6월 고성·양양·설악산 등지에서 관군과 교전하였으며, 7월 황해도로 진출하여 함은준(咸殷俊)의 관군과 접전하였고, 이어 평안도 양덕·맹산으로 진군하며 관군과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9월 고원·영흥·정평을 거쳐 함흥에 입성, 함흥부를 점거하였으나 국내에서의 장기 항전이 불가능해지자, 두만강을 건너 간도지역으로 망명하였다. 관동구군창의진은 원대한 계획, 광범위한 활동영역, 충실한 병력 등으로 을미의병사상 가장 뛰어난 의진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