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통일주비회(軍事統一籌備會)
국내 국민회의 박용만, 하와이 국민군의 김천호(金天浩)·박승선(朴承善)·김세사(金世唆), 간도국민회의 김구우(金九禺), 서로군정서의 송호(宋虎), 국내광복단의 권경지(權敬止), 하와이독립단의 권승근(權承根)·김현구(金鉉九)·박건병(朴建秉), 국내청년회의 이장호(李章浩)·이광동(李光東), 대한국민회의 남공선, 국내노동당의 김갑(金甲), 국내통일당의 신숙·신성모(申性模)·황학수(黃學秀) 등 10개 단체의 대표들이 1921년 4월 20일 북경 삼패자(三牌子) 화원에서 군사통일주비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군사통일방침을 토의한 결과, 러시아에 주둔하는 부대는 국내 공격시에 출동하고, 남만주와 북만주에 산재한 부대는 유격대를 편성하여 국경 방면에서 유격전을 전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지휘권을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에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