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당초문과 비신 상단의 귀접이는 고려 중기 이후부터 나타나는 형식의 하나이다. 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김효인은 충렬왕 때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아버지로 글씨에 뛰어났다. 이 비문은 구양순체(歐陽詢體)의 글씨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달함을 잘 살렸다.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한국금석문대계』3(조동원, 원광대학교출판국, 1983) - 『朝鮮金石攷』(葛城末治, 東京 : 國書刊行會, 1974) - 『朝鮮金石總覽』上(京城 : 朝鮮總督府,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