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갑(金悌甲)
고려의 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이며, 할아버지는 김언묵(金彦默)이고, 아버지는 진사 김석(金錫)이며, 어머니는 기형(奇逈)의 딸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의 정자(正字), 병조좌랑, 정언(正言)을 거쳐 1581년(선조 14)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583년 우승지로 있으면서 도승지 박근원(朴謹元) 등과 함께 이이(李珥)·박순(朴淳)을 탄핵하다가 벼슬에서 물러났다. 1588년 평안도 지역 국경방어강화책의 일환으로 특별히 창성부사로 임명되었지만, 70세에 가까운 늙은 문관을 보내는 것이 불가하다는 병조판서 정언신(鄭彦信)의 반대로 해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원주목사로 있었는데, 왜장 모리[森吉成]가 거느린 왜군이 관동지방을 휩쓴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