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陜川郡)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의 호구수는 합천군 464호 1,517인, 초계군 463호 2,537인, 삼가현 307호 2,027인, 야로현 237호 844인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정인홍(鄭仁弘)이 이 지방 의병을 규합하여 고령·성주 등지에서 왜군을 무찔렀다. 승군을 통솔하여 전공을 세우고 전후의 대일외교에도 크게 공헌한 유정(惟政)은 1610년(광해군 2) 해인사 홍제암(弘濟庵)에서 입적하여 부도와 탑비가 현재 해인사에 남아 있다. 1644년(인조 22) 합천의 관민이 황강변에 신라충신죽죽비(新羅忠臣竹竹碑)를 건립하였다. 1759년(영조 35) 합천군 호구수는 3,956호 2만 1610인, 초계군은 3,352호 1만 4526인이었고, 1771년(영조 47)의 삼가현 호구수는 3,085호 1만 7131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삼가현이 삼가군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