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李建英)
그는 1942년 반도총후미술전(半島銃後美術展)에 「개발지(開發地)의 추(秋)」를 출품하여 안동숙(安東淑), 박영선(朴泳善), 박원수(朴元壽) 등과 함께 특선을 수상했는데 이 전람회는 군국주의적 색채가 짙은 공모전으로 김은호(金殷鎬)와 이상범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1944년 결전미술전람회(決戰美術展覽會) 일본화부에 「도전하다」를 출품하였다. 1946년 최석재(崔錫在), 김순배(金舜培), 김찬희(金燦熙), 임직순(任直淳), 김기택(金基澤) 등과 함께 순수미술인 단체인 인천미술동인회를 조직하고, 1948년 이석호(李碩鎬), 김기창(金基昶), 정종여(鄭鍾汝), 이팔찬(李八燦), 조중현(趙重顯), 박래현(趙重顯) 등과 함께 동양화연구소를 개설하였다. 같은 해 김기창, 정종여, 박래현 등과 ‘동양화7인전’을 개최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