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계군(江界郡)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1432년(세종 14) 당시의 호수는 604호, 인구는 4,248인이고, 군정(軍丁)은 익군이 436인, 수성군이 48인이며, 강계도삼익군(江界道三翼軍)은 1,741인이었다. 1442년 3월에 도절제사영을 영변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가, 1446년 1월에 파하여 다시 영변으로 옮겼다. 1450년에 복치하였다가 1453년(단종 1)에 또 파하였다. 그러나 강계는 방어의 요충이고 민사(民事)가 몹시 번거롭고 바쁘다고 하여, 1433년 5월에는 판관을 두고, 또한 1449년 5월에는 문반토관(文班土官), 1462년(세조 8) 7월에는 무반토관을 설치하였다. 세조 초에 4군을 폐하고 우애·자성 2군의 백성을 강계로 옮겼으며, 1457년(세조 3) 10월 익군을 파하고 강계진을 두니, 이산·위원·자성이 이에 속하였다. 1555년(명종 10)에는 부사 박수린(朴秀麟)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