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郭尙)
윤관(尹瓘)의 화폐사용 주장에 반대하여 쟁론[^3]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103년(숙종 8)에 수사공(守司空)으로 치사하였다. 그는 성격이 소박하고 곧았다. 그리고 다른 재주가 없었지만 평생 재산을 늘리는 일을 하지 않아 집에 남은 재물이 없었다. 1011년 동추밀원사로 상서좌승 허경과 함께 요황제의 즉위를 축하기 위해 요나라에 가서 방물을 전했다.[^4] [^1]: 요나라 방문 : 고려사 권10, 세가, 선종(宣宗) 3년 윤2월. "요에 사신을 보내 천안절을 축하하다" [^2]: 서경유수사 임명 : 고려사 권11, 세가, 숙종(肅宗) 7년 3월. "이오 등을 관직에 임명하다" [^3]: 화폐 반대 쟁론 : 고려사 권97, 곽상 열전. [^4]: 요나라 방문 : 고려사 권11, 세가, 숙종(肅宗) 6년 9월. "요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다" - 『고려사(高麗史)』